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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소녀 일탈기

일일 교사

by 비말 2016.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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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교사 (또 다른 하루)

Mrs. Hart 가 땡큐 카드와 함께 사진을 주시면서 카피를 갖고 싶다셔서
스캔을 해뒀던 것을 이제사 찾았네요~ CD에 다시 옮겨 놓았기에 남아있지 어쩌면
영원히 못 만났을 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힌 사진이라 없어진 줄 알았는데
카메라를 잘도 피해 다녔다 생각 했는데 용케도 잡으셨네요.

미세스 하트의 2 학년 교실에서 23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국 서울에서 온
전학생 한 명 때문에 등교에서 하교까지 온 하루를 공부하고 놀면서 한국 소개도 하고
한글도 가르치고 배우면서 그날은 참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전학온 지 한달이 되도록 입을 봉하고 선생님과 눈도 못마주치는 영훈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신경이 써이신다면서 몇 번씩이나 은근히 말씀 하셨더랬는데
겨우 시간이 나서 특별한 준비도 없이 일일 교사 놀이를 했네요.

처음엔 자기랑 똑같은 사람을 보자 반가움으로 흘끗거리며 눈치만 보다가
“영훈아 이리와” 하며 옆자리를 가르키자 눈이 커다래 져서는 멈짓 거리다가 못이기는 체
슬금슬금 스물 두명의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다가 와서는 그 이후
몇 시간을 제 옆에만 붙어.. 제 옆의 까만 옷 입은 아이입니다.



그날 이후 영훈이는 공부도 금방 따라 잡고 아이들과 어울려 장난도 잘
치며 다시 쾌활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쯤 삼중 언어를 구사하는
스물 여덟살의 코리안 어메리칸 멋진 청년으로 열심히 살고 있겠지요.

미세스 하트 옆집에 살기에 가끔 봤던 리키가 “미스 지아, 사인 해주면 안되요?”
하며 종이와 연필을 들고 오니 모두가 다 종이 한장씩 들고와 줄을 서서는 “미투~ 미투~”
난생 첨으로 스무 세장의 싸인을 하면서 허리도 뻐끈 다리도 후덜덜..
“난 연예인은 못하겠네!” 혼자 김칫국 마시는 생각도



눈치 빠른 에리자베스가 얼릉 연노랑색의 레모나이드 병을 들고와
한컵 가득 부어 주는 걸 마시며 “땡큐 베스!” 했더니 갑자기 와락 달려 들어 허릴 감아
안는 바람에 그녀를 따라 또 다른 스물 두명의 아이들과 허그 “아구 허리야~”
그래도 참 살맛나고 즐거운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미세스 하트는 이미 그 당시 정년퇴직을 하신 후 셨는데도 당신이
가르치시던 아이들과 학교에서 필요로 할 경우 마다않고 학교에 가셔서는 한 학기
이상을 아이들과 함께 하시곤 하셨는데 그 덕에 저도 시간을 쪼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도리어 제게는 큰 공부가 돼줬던 날들이었습니다.



텃밭의 파가 너무 겉자라 잘라다가 생선 전감에 튀김가루 대신 팬케익
가루를 입혀 이름도 국적도 불분명한 퓨전 부침개로 거듭나고 지난 겨울 사뒀던 말린
도라지무침에 오이채 쏭쏭 알알이 맺힌 석류와 활짝 핀 아이리스와
봉긋 솟은 꽃봉우리가 햇살놀이를 하는 오후입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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