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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여자

백발꽃과 푸세식 똥똣깐

by 비말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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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꽃과 푸세식 똥똣깐

창밖 뜨락에 하얀 오렌지꽃잎이 하나씩 날리는 걸 보면서 유년 시절을 남쪽 바닷가 마을 사계의 구분이 뚜렷하지도 않던 충무시 (지금의 통영) 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갔던 어느 날을 떠올립니다. 서울역에 새벽열차에서 내린 아직은 캄캄한 새벽. 한번도 본 적도 만난적도 없었던 발자국 하나없는 하아얀 눈길을 밟으며 신기해서 추운줄도 모르고 처음 타본 기차 (완행열차) 에서 내려 형부손에 꼬옥 잡힌 체 걷고 또 걷던 어느 새벽길이 잠시 떠오르기도 합니다.

집으로 오던 중 잠시 들린 푸세식 똥똣깐 안에서 내다본 하늘에는 하아얀 백발꽃이 흐느적거리며 날리고 있었습니다.

 

사이프러스, 자카란다, 레몬, 오렌지 나무들

사꾸라 하얀 꽃이파리 같은데 눈이라고 부르던 그 하아얀 눈송이가 하느작거리며 날려 내 신발위에도 앉고 길게 땋아내린 내 양갈래 머리 꼬랑지에도 붙고.. 또 내리고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추워서 벌벌 떨면서도 신기해 택시를 타고 달리는 내내 형부와 언니가 뭐라고 하는 애기들이 하나도 귀에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아이때는 엉터리같은 글을 써놓고 책에 실린 유명 작가들의 글과 내가 쓴 글이 별로 달라 보이지도 않는 거같아 혼자 억울해할 때도 있었는데 국민학교때 글짓기 숙제해 간걸 보시고 담임선생님께서 '애가 좀 이상한 것 같다.' 고 가정 통신문을 보내셔서 들통난 내 글솜씨.. 그게 여엉 기분 나쁘고 맘이 상해서 그 다음부터 아예 글짓기 숙제를 안해 갔더니 화가 나신 담임샘께서 ‘반항한다’ 시며 푸세식 똥똣깐 청소 당번으로 정해 놓으시고 다른 아이들과 차별을 두셨습니다. 헌데 그런 거에 굴할 비말이는 아니었던지라 '웩웩' 거려가면서도 어찌나 똥똣깐을 깔끔하게 청소를 잘 해 놓았던지 도리어 선생님께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10대 때는 기성작가들 흉내만 내느라~

그 시 제목이 ‘백발꽃’ 이었던가? 할머니들이 동네 평상에 모여 앉으셔서 얘기들 하시는데 하늘에 떠있던 구름과 할머니들  머리카락이 똑같아 보여서 그 느낌을 써냈던 건데.. 그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장래 촉망되는 여류작가 하나 매장 시키신 건 아니셨던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압니까? 박경리 선생님 동네에서 나고 자란 비말이가 그 분과 같은 갱물로 간한 김치를 먹고 같은 동네 당을 걸어다니고 같은 목욕탕을 사용했을 지도 모르는데 '토지' 같은 멋진 대하 드라마 몇 천쪽짜리 장편소설 못 써내라는 법 있었겠습니까? 너무 나간다고 눈흘김 하실라~

블방에서 만들어낸 댓글답글 덧글들로만 해도 여러 수 십권의 책이 됐을 텐데요. 아참 비말이는 블방용 전자책은 안만들었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자뻑은 여전한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아무한테도 안들키고 잘 해나가던 이런저런 일들이 자꾸 펼쳐지면서 재미가 없어집니다. 역시 일기는 혼자 쓰는 게 진실하고 참일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할머니들 옆에서 본 구름 꽃?

요즘 또 시들해지며 간절인 배춧잎처럼 풀이 죽는 몸맘이 흐느적거리면서 손가락 힘이 모래알 빠져나가 듯이 스르륵 맥을 못 췁니다. 뭔가를 할 수있는 계기가 생기고 누군가들의 '응차 응차' 기운돋는 응원이 필요한가 봅니다. 거울속 제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사돼 얼핏 백발꽃이 핀 듯 은빛으로 빛나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갑니다.

'무슨 일이야?' 어느 새 짝꿍이 옆에 와 뭔일이냐고 묻습니다. '아, 이 나이에 사춘기도 아니고..' 어릴 때 푸세식 똥똣깐 청소 시키셨던 담임샘 얼굴이 스치면서 머리에 뿔을 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중에 다시 청소 잘 했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그 따듯한 미소와 손길이 머리에 생긴 뿔을 잘 달래줘 들숨날숨으로 고른 숨을 쉬게 도와 줍니다.

 

세월은 가도 남아있는 것들, 원고지 사진

1984년, 언니께서는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놓고 거짓없이 써야 되지 않겠냐?' 시며 더는 딴지 잡힐일 없는 편한 나이 한 오십쯤 되면 '이만하면 세상 살아본 느낌 알만하다' 그럴 때 글 써라고 말리셨더랬는데 저 역시도 매달 글 만들어내는 일이 슬슬 자신이 없어질 때라 그런 말씀 해주시는 언니가 고마왔고 그래서 미련없이 원고지를 벽장속에 밀어 넣어버렸는데 저 200자 원고지 뭉치들을 들고 지구 반대편을 돌아 태평양까지 건너올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쯤 어느 짐뭉치속에 묻혀있는 지도 모를 저 원고지가 블방용 사진으로 남아 또 다시 눈에 띄는 날입니다. 엊그제 국제 통화중 서울언니께서 '나도 글을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좀 써봤더니 여엉 아닌 것 같다' 시며 '철자도 틀리고 글도 술술 안 읽어지고.. 80년 가까이 성경책 신구약을 몇 번씩이나 듣고 읽고 썼는데..' 하시길래 '그냥 그런 거 무시하시고 써 두셨다가 애들한테 시켜 소포로 보내 주시면 제가 고쳐 다시 보내 드릴 께요' 그러면서도 오래 전 언니가 말리지 않으셨으면 '난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블방용으로 남의 마음 헤아리는 건 아닐 것 같다며 또 다른 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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