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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짓는 여자

봄날 단상과 치커리 밥상

by 비말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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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무늬 좋은 바람불던 날

 

잠시 후면 사라질 햇살무늬가 너무 빛나 주위의 것들을 빛바래게 합니다. 눈앞에들 '있으니 다행이다' 그러면서도 언제 또 빛을 잃을까 마음은 쿵쾅 쿵쾅 캉캉 춤을 춰댑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어디 그것들 뿐이겠습니까?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생기고 어둠이 있으라 하시매 어둠이 생기고 심심하여 만들어내신 아담도 있었고 그에게 친구도 만들어 이브도 있었는데..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한 노력은 예전에는 장을 보고 다듬어 삶고 지지고 난리굿을 해야만 식탁에 겨우 몇 개 올릴 수 있었는데 이젠 지갑과 스맛폰 하나면 끝판왕입니다. 사라지지도 않는 맛집들.. 어제 그 집이 사라져도 오늘 다른 집이 생겨납니다.

햇살무늬 좋은 바람불던 날 비말네 뜨락

일하던 연장들 전기톱 에에건들을 내려놓고 칼과 소쿠리를 챙겨들고 페리오 문을 나서 치커리밭으로 들어섭니다. 봄할매 놀이 삼매경에 잠시 정신줄 놓고 치커리를 켜다보면 '옴마야, 이걸 누가 다 먹어?' 잠시 누구네 좀 주고 누구네도 주고.. 그러다 말아버립니다. 다듬어 깨끗이 씻어 그들의 입맛까지 들먹이며 해 줘봤자.. '그래, 그만두자!' 마음을 굳게 닫습니다. '이렇게나 많이?' 하던 짝꿍도 담날 아침 식사 준비용 샌드위치에 넣으면 되겠다고 얼릉 도우미가 돼 줍니다.

카라 릴리가 여기저기 뽀족히 꽃대를

그린떰 (Green Thumb) 식물을 키우는 손. 오래전 외국인 친구들은 저를 그리 불러 줬더랬는데 요즘보면 짝꿍이 ‘그린썸’ 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경기도 어디쯤에서 꽤나 큰 농사를 지으시던 조부께서 자식들한테는 삽.괭이 자루도 못 만지게 하셨다는데 어릴 때 할아버지 껌딱지였던 짝꿍은 그 느낌만은 물러 받았던지 처음에는 말리는 마눌 눈치 보느라 숨어서 하던 일을 나무화분 몇개 만들어 내더니 당당하게 페리오 밖 뒷뜰로 불러냅니다. 이미 사라진 것들이 그 곳에 다시 자리를 잡고 또아리를 틀고들 앉아 '어서와, 비말아!' 알은 체를 합니다.

키친안에서 만나지던 서쪽하늘과 바둑이

창밖 내다보며 엄한 생각하느라 불옆에 서서도 죽을 누렇게 만듭니다. 걱정하는 마눌 안심 시키느라 '괜찮아, 죽이 타면 누룽지로 먹어도 맛있어!' 참내, 모든 것이 긍정적이라 좋습니다. 냄비 여럿 버린 블방녀인네들도 많았는데~ 이젠 거의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 에서 쩜 하나만 빼면 다시 '님' 이 될 텐데.. 요즘은 스맛폰 놀이들에 몸맘 달궈져 블방질은 '왜 해?' 라나 봅니다.

창밖은 바람이 심해 빈화분이 구르고 구름은 흩어졌다 모였다 나뭇잎은 아름다운 녀인 널뛰 듯 하는데 한 줌 햇살받으며 강쥐 바둑이는 노구를 앉히고 뭘 저리 지키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자카란다 나무위 새집의 아기새들 지키느라 저러고 있겠지요? 옆집 황금 냥이뇬과 대적하기 위해 힘 모으나 봅니다.

봄날 단상과 치커리 밥상이 봄빛처럼

맛난 음식들도 좋은 사람들도 싫은 것도 나쁜 것도 다들 사라지게 됩니다. 햇살이 사라지고 그 무늬도 사라지면 어둠속에서 다시 빛이 살아납니다. 아담이 이브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었는지 이브가 이뻐서 아담이 따다 줬는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성경 말씀을 다시 의문형으로 돌리면 안될 것 같아 그냥 '그렇다' 합니다. 남들은 내 돈 내 산으로 맛집앞에 줄을 서든가 말던가.. 비말네 맛집은 마르지않는 샘과 같이 치커리가 널널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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