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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여자

블로그 접을까? 나야 나 비말이

by 비말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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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접을까? 나야 나 비말이

이민 초창기 돈도 좋지만 입다물고 귀막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걸 깨우친 어느 날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억력 좋은 거 하나로 대충 넘어가 주는 날들이 많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쉽지 않았던 80년대 미국생활. 대학교에서 목소리도 작은 데 영어도 콩글리쉬인데~ 남들 앞에 서는 거 무쟈게 힘든데 미국 교수님들은 강의료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매시간 매과목들마다 학생들을 교탁앞으로 소환해 내고는 대신 강의를 시키십니다.

혼자서 혹은 팀으로 일주일 정도 걸려서 만들어낸 과제를 들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라시는데 않하면 낙제, 한 학기 올백 (A) 학점을 다 받아도 한번 잘못하면 50점 감점 (F 학점) 을 주는 교수님들도 있었습니다. 혼자 만들어내는 숙제는 백점,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는데 팀으로 하는 과제에서는 마음 고생이 늘 심했습니다. 매번 좋은 아이들과 팀을 이뤄는 것도 아니고.

 

 

사람앞에 나서는 게 겁났던 (실수할 까봐) 저는 준비과정으로 책들을 빌려다 읽고 아웃라인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주로 했는데 뒷마무리는 영어 잘하는 입에 영어물고 나온 애들이 할테고요~ 어느 날 평상시 친절하고 다정다감하셨던 여교수님께서 '오늘은 지아 (비말이의 블방용 이름) 해보는 건 어때?'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쳐서 제 머리를 강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갑자기 눈도 따끔거리고 배도 아파지고~ 암튼 나가서 준비물을 훑어봅니다. '아, 어지러워~'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영어권인 아이들은 껌 씹듯이 잘근거릴 글들이.. 프린트 종이만 하얗게 보입니다. 거의 혼자 준비한 거라 그냥은 다 외우고 있었는데!

 

 

아직 솜털도 채 가시지않은 어린 햇병아리들과 함께 공부하는 강의실에서 다들 딴청들하며 키들거리고 있는데 '저 작은 동양 여자는 뭔 소릴할까?' 궁금치도 않다면서 지들끼리 쑥떡꿍~ 일단 주의를 돌려야 겠기에 칠판에 'Sun of the California Beach' 라고 큼직하게 써 놓습니다. '뭐야?' 미국하면 캘리포니아 태양과 바다지~ 뭔가 글을 잘못 써놓은 줄 알고 쉬쉬하며 숨죽인 강의실에 정적이 흐릅니다. 잠시 후 '욕을 써려고 그랬나?' 우리 한국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비속어가 '엄마 강쥐와 강아지' 를 묶어 한.. 영어로 하는 욕을 말하는 거였고요. 누군가들은 옆 아이들과 다시 쑥떡거립니다. 교수님도 좀 놀래셨던지 교탁 모서리를 자로 치면서 'Quiet guys, noisy!' 조용히들 좀 하지? 소릴 지러십니다. 50대 초반의 엄마같은 분이셨는데..

 

 

그 날부터 비말이는 말문이 틔이고 한국인들 몇 안되던 학교에서 쿨하고 멋지고 (불고기 만두 김밥들 사 먹이고 계산은 먼저) 똑똑하고 (처음 만나지는 외국인들한테는 꼭 스펠링을 정확하게 알려 달라고 해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고) '굿 코리안' 으로 한국인의 성실함을 부지런과 근면으로 무수리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블로그에서는 글쭐 길고 말많다고 투박들 하시지만~ 한번도 말도 안 섞어본 분들이.

블로그에서 가끔 이상한 글 포스팅이나 대화란에서 이런저런 댓답글드리고 나면 난감하다 못해 청양고추 백개는 씹은 것처럼 속이 따끔거립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를 다시 찾아내게도 되고요. '나야 나, 비말이' 아무도 새 글에 안들어 오시면 다음부터 댓글칸 막고 하지 뭐.. 그러면서 혼자 맘 다지면서 후회 아닌 후회로 위로를 해댑니다.

 

 

나이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좀 그런 세상에 살면서 부지런도 열심도 병이라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려 지는 날들~ 다른 듯 같은 글들로 매일을 달리면서 블로그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함께 글놀이 하시던 많은 블로거님들이 있는 듯 없는 듯 함께들 해 주셨지만 이젠 모든 게 너무 힘들고 어려워만 집니다. '나는 나다' 그러면서 걸어온 삶의 여정들이 먼발치에 서서 아지랭이로 손짓해 불러댑니다. 블로그 접고 그냥 쉬자고.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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