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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소녀 일탈기

비말네 뜨락 꽃씨 (Seed)

by 비말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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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말네 뜨락 꽃씨 (Seed)

아이리스 꽃이 언제 피고 졌는지 지난 몇 달 동안 본적도 느낀적도 없다는데 이 겨울 다시 꽃씨를 물고 하나씩 둘씩 톡톡 입을 벌려 보입니다. 올 가을은 석류나무만 보느라고 다른 아이들한테는 별로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습니다.

올 봄에 그리고 지난 여름과 가을 잠시 잠깐씩 스치듯 이미 말라 누우렇게 떡닢진 꽃잎만 만났더랬는데 하나 두울 셋.. 갈색으로 영글은 씨앗들을 세다가 왼쪽 새끼 손가락을 가만히 가까이 가져 갔더니 갑자기 '톡' 하며 까아만 씨앗을 쏟아 줍니다. 아서라~ 얼릉 오른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받칩니다.

 

석류나무 그리고 석류알갱이들

 

오른쪽 엄지와 검지로 '또옥 똑~' 모가지를 따내 왼손바닥을 활짝 펴고는 하나 두울 셋.. 받아놓고 얹고 또 얹고 씨앗탑이 만들어 집니다. 손안에 가득 쌓아올린 씨앗들은 제 풀에 지쳐 허공을 가르며 땅으로 무너져 내리고 다시 얹고 쌓고 무너져 내리고.. 종내에는 입고 있던 치마를 펄쩍들어 올려서는 자루 모양으로 오무리고는 하늘 땅 담너머를 빼꿈눈으로 휘둘러 보고 나서야 무릎 걸음으로 쪼그리고 앉아 왼손 오른손 쏟아져 내리는 꽃씨들까지 다받아내며 목화꽃 따는 아가씨라도 된 양 잠시 정신줄 놓고 메달려 봅니다.

작년과 올 한 해, 이런 저런 꽃씨들이 참 많이도 달렸습니다. 그 만큼 꽃과 열매도 많았다는 얘기지요. 한참을 치마에 받다보니 800 미터를 뛰고 난 후처럼 숨이 가쁘고 목이 마르는데 페리오 문만 열고 들어가면 있는 물도 찾아 마시기 귀찮을 만큼 지칩니다. 무릎은 '두두둑'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아파라' 하는데 다행히도 파스는 잘 붙어 있습니다. 흡사 길고 긴 터널을 뚫고 나온 듯 삶의 여정같은 그런 시간들이었지만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석류나무와 석류, 붓꽃과 씨앗들

 

이른 새벽 동도 틔기전에 창앞에서 만나진 아이리스가 물방울을 머금고 '나 보여?' 노오랗게 영글은 오렌지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그 새를 못 참고 '뚝' 떨어져 마음을 아프게도 합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아이리스 씨앗들이 뱅기를 타고 이곳 저곳으로 많이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돈들여 보내진다 해도 공짜로 그저 받는 이들이 얼마큼 생명을 키워낼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보냈습니다.

2016 년 아이리스는 키가 겉자라 계속 꽃대를 잘라 버렸더니 안이뻐서 그냥 모른 체 뒀더니 지들끼리 눈맞춰고 입맞춰서 버려둔 게 미안할 정도로 많은 꽃씨를 쏟아냅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아이릿 (Iris), 꽃씨들 (Seed)

 

올 해는 석류를 그냥 나무에 메달은 체로 '새 밥' 으로 둡니다. 비말네 집에 오는 새들은 이것 저것 입맛대로 골라 먹느라 해마다  먹는 석류씨앗은 '이제 그만' 그러는가 봅니다. 나중 배가 고파봐야 알테니 몇 개만 남기고 땅에 도로 다 숨겨 버립니다, '이듬해 봄에나 보자' 고 하면서요.

어느 해 여름, 한국 마켓에서 특별 세일로 $100 이상 물건을 사면 참외 한 박스에 1 불에 준다는 걸 사와서는 다 먹고 땅에 숨겨 심은 참외가 싹을 틔우고 잎을 내더니 드뎌 뜨락을 기면서 '날 좀 보소!' 미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참외, 아이리스, 오렌지, 다육이 그리고 꽃씨들

 

어쩌다 보니 2016 년 한 해 동안에는 저 풀꽃나무들이나 씨앗들보다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너무 적게한 것같아 많이 미안해 집니다. 저 자신에게도 나무들에게도 과실들에게도 꽃씨들에게도요. 

저 많은 애들을 어찌 했느냐고요? 똑 같은 연유로 이리저리 내 몰리다가 땅에도 숨기고 시집도 보내고 다시 피고 지고 또 피어 꽃씨를 받아낸 아이들은 이삿짐속에 숨겨져 찾지도 못한 체 또 다른 봄을 맞습니다. 얼릉 짐 정리도 해서 2023년 이 봄에는 정성껏 땅에 숨겨 심어 이뿌게 키워볼까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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