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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여자

아무도 아닙니다 The World As I See It

by 비말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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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닙니다 The World As I See It

 

거기 누고?/ 아무도 아입미더, 숙입니다./ 그으래 맞네, 아무도 아이네!/ 예에, 맞십니더.

어릴 때 우리 뒷집에 살던 숙이하고 그녀의 조모가 삐꺽거리는 부엌문과 안방문을 사이에 두고 늘 오가던 말 이었습니다. 숙이는 전설따라 삼천리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그런 사연처럼 강보에 쌓인 체 그집 대문간에 버려져 줏어 길러졌다는 건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뜬금없이 뇌리를 빛의 속도로 스치는 뭔가들이 자주도 일어나는 요즘 '나 혹시 미.쳐가는 건 아닐까? 짝꿍한테 그러면 '너, 천재라서 그래!' 웃지도 않으면서 놀립니다.

 

 

나보다 두살 더 먹은 눈이 크고 까무짭짭하게 생긴 착하고 순하디 순한 아이였는데 당연히 언니뻘인데도 그냥 이름을 부르며 두 집 누렁이 넘나드는 개구멍으로 둘이 오가며 온갖 요시락 방정들을 떨어대며 놀았던 숙이, 자기네 집 헛간이나 빈방들에는 일년 내내 먹고도 남을 곡식들이 쌓여있는데도 우리집 울엄마가 무쳐주는 콩나물이 맛있다고 눈치를 보면서도 밥 때가 되면 괜히 어슬렁거려 작은 오빠한테는 미움을 받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착한 심성덕에 오빠도 눈감아 주기도 했던..

네살 터울 여동생한테 시종처럼 부림을 당하면서도 늘 해맑게 웃던 아이 '니는 성 낼줄도 모르나?' 물으면 씨익 웃으면서 '어데~ 내 동생인데 어떻노!' 콩쥐 팥쥐 동화책에서 보다 먼저 알아낸 '계모' 라는 말이 그녀와 그녀의 엄마 사이였습니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헤어졌다가 놀러간 어느 가을 고향 마을에서 열아홉 숙이가 친정에 와서 뽀오얀 속살을 보이며 박꽃같이 하얗게 웃고 있는 아가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보고 그냥 퍼질러 앉아 울어버렸던 기억과 함께 오래 전의 그 날이 속눈썹에 무게를 더해 주면서 '누고? 아무도 아입미더!' 뜬끔없이 숙이와 그녀 아이의 박꽃같던 얼굴들이 아직 해가 뜨기전 새벽을 지나 하얗게 색바랜 둥근달과 함께 스쳐 지납니다. 내 눈물 방울인지 무게를 얹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림을 느끼면서요.

 

 

Albert Einstein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 저서인 'The World As I See It' 가 사진으로 올려진 오래된 포스팅 글을 보면서 도대체 몇 분들이나 정신 사나운 색바랜 편지를 들고 선 '비말이의 글을 이해해 주실까?'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섭니다. 머리도 서론도 본론도 없이 결론만 있는 글, 결론도 서론도 없이 본론만 있는 글.. 그래도 맘씨 좋으신 누군가들은 함께 해주시면서 '맞아, 나도 그래!' 라며 놀아주셨던 것을 새삼 감사해 합니다. '아무도 아닙니다 The World As I See It' 아무도 몰래 혼자 세상밖 나들이를 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블로그가 바로 그런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했지요. 나는 아무도 아니지만 나를 나로 봐주는 곳~ 그냥 글을 쓸 수 있어 좋았고 친구가 있어 좋았던..

 

 

어떤 날은 '이런 친구 한 사람 쯤 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 그런 맘 될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욕하고 험담하고 싶을 때 '그러지 마라 그건 좋지 못 한 일이다' 충고하는 바른친구보다는 '그래, 나도 그 사람 웬지 껄끄럽고 맘에 않들더라!' 쬐끔은 심뽀 삐딱한 잠깐이라도 내 편 돼주는 그런 친구가 말입니다. 내가 우울해 하며 회색 틀안을 벗어나지 못 하고 센티멘탈해 있을 때 '원 나이값도 못하고 등 따시고 배 부르니 별 희안한 꼴 다 보인다' 고 핀잔주는 나이값 제대로 하는 잘난 이보다는 같이 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그 틀 안에 가만히 들어와서 함께 옛추억의 노래들을 부르며 '나는 말이다, 니는 말이다' 그런 호칭이 아닌 '우리가 말이다' 이러면서 서로를 그 틀 안에 잠시라도 가둬놓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친구 하나쯤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무도 아니라던 그 숙이가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준 'The World As I See It' 천재라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혼자 생각에서 보던 그런 세상을~ 이런 날에는 저도 보고 싶어지나 봅니다. (2011, 1)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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