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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는 여자

꼬불국수와 자화상

by 비말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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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의 자화상 프리마켓 세일

국수 끓이려고 재료를 준비해 뒀는데 국수가 없다. 그냥 아쉬운대로 라면을 삶아 꼬불국수를 만들어낸다. 어찌 밥만 탐할 수 있겠는가? 먹고 또 먹고 살아내야 하는 날들에 일을 하려면 진통제를 먹어야 하고 약을 먹으려면 속도 채워야 하니.

라면이 꼬불국수가 됐다~ 꼬불국수와 자화상

교통사고 후 혼자 몸도 가누지 못하다가도 짝꿍 나가고 나면 온몸에 압축 붕대를 감고 전사의 후예처럼 여전사로 거듭난다. 높은 천정까지 올랐다가 떨어져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할 일은 조용히 다 해내고.. 아직도 살아있다.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혼자서 창조를 해냈다

돈 들이지않고 뭐든 가지고 창조를 해낸다. 걸을 수 있는 날 운전대 잡을 수 있는 날들엔 프리마켓이나 그라지 세일을 헤멘다. 뭐가 됐든 일단 만들고 본다. 돌 하나 붙이고 사닥다리 한번 내려서시도 일이었던 그런 날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벽난로 돌을 붙이면서 도를 닦던 날들도 있었고

자화상 (노천명)

5척 1촌 5푼 키에 2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前時代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않게 얹혀져 가냘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고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삼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건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고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간다 대(竹)처럼 꺽어는 질지언정 구리(銅)처럼 휘어지며 꾸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노천명 (1912~1957) 자화상

키친과 리빙룸이 넓고 커서 가벽을 만들어 분리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가벽을 만들려고 혼자 꿈을 꾼다. 넘편이 알면 설명하고 쌈박질 하느라 석달 열흘은 걸릴 일이니~ 그래도 어찌어찌 악악거리며 세워놓고 나니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내가 뭐해줘?' 아, 그 때의 넘편은 진짜 아무것도 집안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일단 타일머신을 먼저 구입하고 디자인 해준대로 타일을 자르게 했더니 곧 잘하고 재미있어 한다. 벽과 바닥의 타일들을 짝꿍이 평생 처음으로 자르고 내가 붙였다.

 

탁자하나 말고는 내 손길 닿지않은 것이 없네?

이 사진속의 것들 중 딱 하나 내 손이 안간 건 탁자 하나다. 쇼파도 카우치도 커튼도 천정의 등도 벽난로 돌가지도 내가 붙였다. 그러면서 이겨낸 세월.. 저 집은 팔렸지만 내 손엔 아직 그 사진들이 남아있다. 라면도 먹고 국수도 먹고 약은 안 먹는다. 나는 아마 이제 살아있는 것 같다. 더는 프리마켓이나 그라지 세일도 다니지 않는다. 창조하는 일도 지친다는 요즘이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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