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의 자화상 프리마켓 세일
국수 끓이려고 재료를 준비해 뒀는데 국수가 없다. 그냥 아쉬운대로 라면을 삶아 꼬불국수를 만들어낸다. 어찌 밥만 탐할 수 있겠는가? 먹고 또 먹고 살아내야 하는 날들에 일을 하려면 진통제를 먹어야 하고 약을 먹으려면 속도 채워야 하니.
교통사고 후 혼자 몸도 가누지 못하다가도 짝꿍 나가고 나면 온몸에 압축 붕대를 감고 전사의 후예처럼 여전사로 거듭난다. 높은 천정까지 올랐다가 떨어져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할 일은 조용히 다 해내고.. 아직도 살아있다.
돈 들이지않고 뭐든 가지고 창조를 해낸다. 걸을 수 있는 날 운전대 잡을 수 있는 날들엔 프리마켓이나 그라지 세일을 헤멘다. 뭐가 됐든 일단 만들고 본다. 돌 하나 붙이고 사닥다리 한번 내려서시도 일이었던 그런 날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자화상 (노천명)
5척 1촌 5푼 키에 2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前時代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않게 얹혀져 가냘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고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삼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건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고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간다 대(竹)처럼 꺽어는 질지언정 구리(銅)처럼 휘어지며 꾸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노천명 (1912~1957) 자화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가벽을 만들려고 혼자 꿈을 꾼다. 넘편이 알면 설명하고 쌈박질 하느라 석달 열흘은 걸릴 일이니~ 그래도 어찌어찌 악악거리며 세워놓고 나니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내가 뭐해줘?' 아, 그 때의 넘편은 진짜 아무것도 집안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일단 타일머신을 먼저 구입하고 디자인 해준대로 타일을 자르게 했더니 곧 잘하고 재미있어 한다. 벽과 바닥의 타일들을 짝꿍이 평생 처음으로 자르고 내가 붙였다.
이 사진속의 것들 중 딱 하나 내 손이 안간 건 탁자 하나다. 쇼파도 카우치도 커튼도 천정의 등도 벽난로 돌가지도 내가 붙였다. 그러면서 이겨낸 세월.. 저 집은 팔렸지만 내 손엔 아직 그 사진들이 남아있다. 라면도 먹고 국수도 먹고 약은 안 먹는다. 나는 아마 이제 살아있는 것 같다. 더는 프리마켓이나 그라지 세일도 다니지 않는다. 창조하는 일도 지친다는 요즘이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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