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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의 글들

봄이오는 소리하나

by 비말 202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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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채워지는 삶의 책꽃이

 

석류나무에 암탉과 병아리 노오란 꽃들이 숨어들어 저도 석류꽃인 양 진홍빛 석류꽃과 부겐베리아 연분홍꽃이 한가지 줄기끝에 메달린 꽃들처럼 서로를 스치고 쟈스민 하얀꽃을 시샘을 하는지 분홍색 제라늄이 틈새를 비줍고 얼굴을 내밉니다. 저 마다의 소리를 내겠다고 지지배배 지지배배 살금살금 앙간힘 써대며 스며듭니다, 저마다의 소리 하나씩 들고.

이철수 판화산문집 '소리하나'

계절은 봄, Spring~ 2023년 달력도 3월 중순을 넘어섰는데.. 허나 마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춥다 덥다 갈피를 못 잡으니 봄이 꽃샘 추위로 얕잡아 보면서 벗어 던지려던 옷깃을 도로 여미게 합니다. Spring~ 스프링~ 방방 뛰면서 달려올 것 같더니 삶의 향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프링 같습니다. '삶은 채워가는 책꽂이' 라던 시인의 글처럼 책안에서만 읽고 느끼다보면 모든 일들이 완전 무결합니다. 흠 하나 티 하나 없이 곱기만 하고 이쁜 소리들로만 가득 채워집니다.

계절은 봄~ 석류꽃, 제라늄, 쟈스민, 핸엔칡스

이젠 언젠지도 모를 1900년대 어느 날에 한국하고도 서울에서 7,000 원 정가붙은 책을 30,000 원도 더 들여서 소포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비말네 집에 보내온 둘째 조카의 정성과 마음에 쏘옥 드는 이 책이 고맙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보내지 말라고 했더니 지난 20 몇년 진짜로 책 한권도 안보내 줍니다. 보내오면 부담스럽고 안보내주면 살짝 아쉽지만.. 혹시라도 보내올까봐 '그러지마!' 다시 한번더 소리를 냅니다.

큰 조카와는 마음이 잘 맞았고 둘째 조카와는 책 읽는 성향이 비슷했고 막내 조카와는 두루두루 기분좋은 느낌들인 듯 했는데 40년 가까이 지구별 끝에서들 살아 내다보니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같이들 늙어간다는 것 말고는.. 보이나 보이지 않으나 하나씩 쌓이고 채워지는 우리네 삶은 책장안의 책들처럼 그 자리에서 다른 세상을 꿈꿔고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들리지는 않으나 마음의 소리하나들로 위로와 응원들을 보내면서요.

소리하나로 채워져가는 삶의 책꽂이

삶은 채워가는 책꽃이 (이철수 1954~)

골라 입을 수 있는 옷가지는 있으면서 가려 읽을 책은 없는 살림은 살림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제 손으로 만든 그릇이나 책꽂이나 찻상 하나없이 꾸며놓은 방은 남의 방일 뿐입니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도 저는 제 삶을 산다 하고 싶을 테지만 천만에 그 삶은 제 것이 아닙니다. 목욕이나 머리 가꾸기는 때를 놓치지 않고 하루 이틀만 뒤를 보지 못하면 장청소를 한다 변비치료를 한다 법썩을 떨지만, 수십 년 묵혀둔 쓰레기가 마음에서 냄새를 풍기는 것은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행한 일입니다. 자칫 마음의 숙변을 청소해 준다는 돌팔이들이나 한밑천 잡게 하고 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책을 읽는 일이나 사는 일이나 조급히 굴 것은 없습니다. 책도 보다 일도 하다 그러면 됩니다.

소리 하나 중 132 ~ 133/ 이철수 판화산문집

옆집 고양이로 부터 새둥지를 지켜라

듣도 보도 못한 새들이 언젠가부터 날아들더니 이주일도 넘었는데, 어쩌자고 저런곳에 집을 지어놓고 지지배배 날이 밝기도 전부터 보채댑니다. '우짜라꼬~ 내가 새냐 닭이냐 사람이지!' 요즘 옆집 모나네 고양이가 울집 담장위에 너무 편한 자세로 앉아 나무밑을 지키길래 날다람쥐 구멍이라도 찾았나 했더니 새알들과 눈도 못 뜬 아기새들을 노리고 있었던가 봅니다. 허구많은 먹꺼리들 두고 왜 하필~ 그래도 그렇지 어찌 나무 이파리들 사이에 새집을 짓니? 버드헤드들 같으니라고! 옆집 냥이뇬 나무라다 울집 자카란다 높은 나뭇가지에 집을 지은 어미새 나무라다 하루해가 짧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고양이라도 쫓아줄까 가까이 가면 죽을 듯이 울어대니 멀리서 안타까운 마음만 전하고 사방에 촉을 세워 고양이만 나무곁에 못 가게 하는데 그래도 지들끼리는 소통이 되는지 바둑이가 가까이 가면 조용해 집니다. '바둑아, 너라도 잘 지켜줘라' 했더니 돌테이블 위에 서서 곁을 스치는 바람도 쏟아지는 햇볕도 마다않고 불침번을 섭니다. 저 때만 해도 울바둑이 청춘이었네요. 100살도 넘어 이빨 다 빠지고 정신도 오락가락 지 밥 때만 기다리던 녀석이 이젠 시도 때도 없이 '할메야, 밥줘!' 앙앙대다 '할베야, 나 피피!' 성가스럽긴 하지만 아직은 함께 해주며 한 솥밥 먹으면서 소리하나로 삶을 채워간다는 것이 고맙기도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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