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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의 글들

초생달 앉힌 풍경처럼

by 비말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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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뜬금없이 어떤날은 작가가 쓴 책속의 내용이 아닌 그 책을 태어나게 한 작가의 마음만을 엿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유명한 작가든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든 그건 별로 중요치가 않습니다. 현실속의 내가 아닌 상상속의 나만을 훔쳐보고 싶을 때도 있 듯이 남들이 아는 '그게 그 사람이야!' 그런 거 말고~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아닌.. 스치는 바람처럼, 새가 날다가 걸터앉는 나뭇가지처럼, 추운 겨울날 새벽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과 옆에 서 있는 나무가 하나가 되어 초생달을 앉힌 풍경들처럼.. 그냥 봅니다. 제게는 박완서 선생님이 그런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린 날 (국민학생) 에는 '빙점' 의 일본인 작가 미후라 아야꼬에 꽂히기도 했지만요.

오랜 세월 그 자리서 지켜본 자카란다 나무

45년도 더 지난 어느 날에 문예란에서 만난 수필 하나를 읽으시고 글 선평해 주신 작가 박완서 선생님, 그 분께야 저라는 아이 스치는 바람같은 존재셨겠지만 제게는 평생 품고 살아가는 혼자만의 즐거움입니다. 찌는 듯한 여름날 내린 단비같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같은 느낌의 잊지 못할 추억장을 열어주신 그 분이 제게 말을 걸어 주시는 것도 같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그 40 대가 아닌 60대 중반도 더 넘긴 제가 다시 책을 펴들고 그 때의 마음을 다시 보듬어 봅니다.

흡사 뿌리가 없는 나무들처럼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195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한국전쟁으로 중퇴/ 1970년 마흔살 '여성동아' 장편소설 '나목' 으로 등단.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세 가지 소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 산문집으로 '세상에 예쁜 것,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살아 있는 날의 소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른 노릇 사람 노릇,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 2011년 1월 22일 여든살에 암으로 원고지와는 잠시 이별 하늘나라로 책상을 옮겨셨습니다.

짝꿍은 뿌리에 톱을 대면 나무가 운다네요

'70년대 초 우리 문단의 통념으로는 좀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을 하게 되었다. (중략) 75년 무더운 한여름을 나는 남편의 옥바라지로 보내야 했다. (중략) 졸지에 파렴치범의 가족이 되어 검찰청과 교도소 주변을 드나들면서 겪은 수모와 ... (중략) 다음해 나는 조그만 체험기라는 100매 안팎의 단편으로 써서 창작과 비평지를 통해 발표하게 되었다. 76년 그 단편이 발표되고 나서의 겨울이니까 77년 정초쯤이 아닌가 한다. J일보 사회면에 여류작가 P씨의 조그만 체험기가 법원에 던진 파문이란 요지의 제목이 달린 기사가 난 것이었다. 눈에 잘띄게 박스 기사로 뽑기도 했지만 여류작가 P씨란 큰 제목이 충분히 독자의 흥미를 끌만했다. 나도 난생 처음 나의 성이 상품화된 듯한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1990년 3 월 박완서 (99-102 쪽)/ 박완서 산문집 7권/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1990년에 출간된 책을 같은 제목으로 재편집

초생달 앉힌 풍경처럼 하늘을 훔쳐본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않은 일일 것입니다. 늘 해오던 일들과 주어진 삶의 무게 속에서 오롯이 내가 되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녹록치않은 선택이며 용기고 하기 힘든 도전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불혹의 나이를 기다리며 제 주어진 일들에 매진하며 24시간을 48시간처럼 쪼개 써면서 밤과 낮을 뒤바꿔가며 살아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뼈가 으스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요. 한편으로는 온 몸으로 부딪혀 온 시대와 누군가들의 삶의 경험들이 제게도 밑거름이 돼 준거라 생각하며 늘 감사해 합니다.

우리 엄마가 살아내신 60, 딱 그 만큼만이라도 살아보겠다고 사고 후 참으로 많은 노력들을 했는데 이제 그 나이를 훨씬더 많이 살아냈음에도 뭔가 아쉽고 '이게 아닌데?'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박완서 작가님, 그 분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다시 보면서 '삶' 을 진심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의 중요함을 되새김질로 초생달 앉힌 풍경처럼 하늘을 훔쳐봅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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