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바랜 편지를 들고

나만의 들숨날숨

비말 2025. 4. 5. 05:37

숨쉬는 것도 남의 힘을 빌리면 좀 편해질까? 하다가 얼릉 생각의 꼬리를 잘라냅니다. 나만의 들숨날숨으로 생각길을 걷다보면 별의 별 헛된 생각들로 머리속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1960년대 남쪽 바닷가 충무시 (통영) 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갔던 어린시절을 눈안에 담습니다. 한번도 못 걸어본 하얀눈을 밟으며 신기해서 추운줄도 몰랐고, 처음타 본 기차, 서울역에 내려 형부손을 꼬옥잡고 걷고 또 걷던 어느 새벽길이.. 창밖의 하얀 오렌지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려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60년 전 쯤으로 마구 달립니다.

창밖의-하얀 오렌지꽃잎이-눈송이처럼
창밖의 하얀 오렌지꽃잎이 눈송이처럼

 

아이때는 엉터리같은 글을 써놓고 책에 실린 유명 작가들의 글과 내가 쓴 글이 별로 달라 보이지도 않는 거 같아 혼자 자뻑할 때도 있었는데 국민학교때 글짓기 숙제해간 걸 보신 담임샘이 '애가 좀 이상한 것 같다' 며 가정 통신문을 보내셔서 들통난 내 글솜씨..

그게 '기분이 여엉 나빠서' 그 담부터 아예 글짓기숙제를 않해 갔더니 화가 나신 담임샘께서 '반항하냐?' 시며 푸세식 똥돗깐 청소당번으로 정해 놓으셨던.. 그 글 제목이 '백발꽃' 이었던가? 뒤끝있는 비말이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안나는 담임샘을 미워합니다.

한 때는-고급원고지-The Best Quality
한 때는 고급원고지, The Best Quality

 

할머니들이 동네 평상에 모여 앉아서 얘기들 하시는데 하늘에 떠있던 구름과 할머니들 머리카락이 똑같아 보여서 그 느낌을 써냈던 건데.. '그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장래 여류시인 하나 매장시키신 건 아니실런지' 혼자 그런 생각하며 십대 후반될 때까지 억울해 하기도 했더랬습니다. 나만의 들숨날숨으로 갈아 앉히기엔 아직은 아기였던가 봅니다.

10대와-20대에는-컴퓨터 아닌-타자기로
10대와 20대에는 컴퓨터 아닌 타자기로

 

1984 년, 언니는 '글쓰는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 놓고 거짓없이 써야 되지 않겠냐?' 시며 나이 오십쯤되면 '이만하면 세상 살아본 느낌을 알만하다' 그럴 때 글 써라시며 말리셨는데 저 역시 자신이 슬슬 없어질 즈음이라 그런 말씀 해주시는 언니가 고마왔고 그래서 미련없이 원고지를 벽장속에 밀어 넣어 버리기도.. 200 자 고급원고지를 들고 태평양까지 건너올 줄은 몰랐습니다.

토마토-햄-체다 치즈-치커리-한 접시가득
토마토, 햄, 체다 치즈, 치커리, 한 접시가득

 

2017 년, 창밖에 보이는 계절은 봄이 한창인 것 같은데 하얀 뭉게구름은 두둥실 코발트빛 하늘은 가을같은데 옷깃을 파고 드는 삶의 감각은 살을 꼬집고 뼈를 두드리 듯 아프게 느껴집니다. 블로그 글친구님들이 '친구공개' 그렇게 문을 닫아걸면 또 문밖에서 혼자가 되어 이 나이가 되어도 깔딱울음 뱉아내며 서러운 생각이 듭니다. '구독, 맞구독' 아직은 그런 게 없던 시간들이었네요.

부겐베리아-붉은 꽃색이 싫다던-비말뜨락
부겐베리아 붉은 꽃색이 싫다던.. 비말뜨락

 

2025년 4월, 유달리 기다리던 봄이 눈앞에 펼쳐지는데도 별 느낌이 없음은 '왜 일까?'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기운을 써기엔 생각 조차 늙어졌나 그런 맘이 되자 만사가 구찮아집니다. 무명으로, 그림자로 놀던 불같던 세월이 손등위 검버섯과 함께 일렁거립니다.

콩나물-숙주나물-배추속-콩밥-배추 한포기
콩나물, 숙주나물, 배추속, 콩밥, 배추 한포기

 

일터에서 키친에서 혹은 컴퓨터앞에서 각자의 일에 정성을 쏟고 있실 블방안을 소리도 없이 조용히 그림자되어 떠돌아다니면서 깊어가는 겨울밤 동네 사랑방에 모여앉아 수다 떨듯이 함께 글동무해 주신 불친님들을 머리속에서 한분 또 한분 떠올리면서 숨을 골라봅니다, 나만의 들숨날숨으로.

비말 飛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