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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의 글들

소나무와 마블케익

by 비말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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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 사이로 익는 것

가끔 홈디포에 자재들 사러 갔다가 공짜로 얻어오고 싼값으로 그저다시피 가져오는 소나무 송판들로 미니 서랍장이나 캐비닛 문짝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전기톱이나 손으로 톱질해서 잘라낼 때의 그 느낌과 송진냄새가 너무좋아 자르고 또 자르면서 ‘우리는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잘라져 나가는 판자들과도 대화를 나눠기도 합니다.

솔잎 사이로 익어가는 것들

오래전 포스팅 했을 글과 사진들이 너덜해져 제 구실을 못하고 블로그 대문 걸어 잠그고 보따리 싸서 '방 빼' 할 때마다 싸뭉쳐들고 다녔더니 언제적 것인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바둑판에서야 흑백 돌 두 색으로 땅따먹기 하면 된다지만 장기판에서 수많은 병졸들과 함께 하다가 차떼고 포떼고.. 그러다보면 남는 게 무에 있겠습니까?

포스팅 사진과 글들이 뒤엉켜 글 쓴 저도 모르겠으니 이것도 지우고 저것도 지우다 종내에는 다 들어내고 아예 새 판을 깝니다. 어릴 때 '등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던 글을 책에서 읽고 어느 날 울아버지가 하시던 말씀과 연결고리가 되어 마냥 좋았던 소나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빠져 들었습니다.

구름이 소나무를 첫사랑으로 택했나봐요

옛집에 두고온 것들 중에 커다란 두 그루의 소나무가 대문 울타리안에 있다하여 별로 포스팅으로 올려 보지도 못했는데 골프장이고 어느 산동네 입구 혹은 글친구님들 포스팅에서 만나지는 소나무들을 보노라면 울컥해지기도 하더랍니다. 오늘은 지난번 다른 동네에서 만난 남의 소나무들과 이 해인님의 '소나무 연가' 로 송진냄새를 소환해 냅니다.

멋있고 맛있고 행복해지라고

소나무 연가 (이 해인)

늘 당신께 기대고 싶었지만 기댈 틈을 좀체 주지 않으셨지요/ 험한 세상 잘 걸어가라 홀로서기 일찍 시킨 당신의 뜻이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서러워 울었습니다/ 한결 같음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주제넘은 허영이고 이기적인 사치인가요. 솔잎 사이로 익어가는 시간들 속에 이제 나도 조금은 당신을 닮았습니다/ 나의 첫사랑으로 새롭게 당신을 선택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의무가 아니라 흘러넘치는 기쁨으로 당신을 선택하며/ 온몸과 마음이 송진 향내로 가득한 행복이여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이해인 기도시집 중 소나무 연가

솔향을 머금고 솔잎을 가르며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이런 저런 노래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이들어 가면서 내 고국을 상징하는 나무처럼 기억하며 보이지도 않는 나이테를 마음속으로 헤아려 봅니다. '한결 같음이 지루하다' 고 말하는 것이 주제 넘은 허영이고 이기적 사치라 말하시는 이 해인님 시 (詩) 에서 처럼.. 한결 같음이 얼마큼 감사함인지를 다시 일깨워 자신을 깨우칩니다.

소나무 둥치에서 떠온 듯 마블케익

마블케익이 이 포스팅의 소나무와 많이 닮은 느낌이라 전에도 올렸을 쟁반을 또 올리나 봅니다. 봄색과 가을색이 적당히 함께 한 것 같아서요. 바나나 바베큐 치킨요리는 자주 하는 편이라 맛은 모르시지만 이름은 비말이네 맛집에서 자주 보셨을 겁니다. 깍두기 치커리와 오렌지가 함께 해 줬습니다. 사실 오늘은 더 맛있는 거 만들었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꿔 급조해 냅니다. 주말 기분좋은 시간으로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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