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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여자

애증의 사랑빤쓰, 사론파스 (Salonpas)

by 비말 202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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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사랑빤쓰, 사론파스 (Salonpas)

어린 날에는 늘 아버지 심부름으로 동네 안에 딱 하나뿐인 구멍가게 순이네에서 사론파스를 사다드리는 게 저의 또 다른 용돈구입처 였는데 그게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일이라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아직은 미취학 아동이라 한글을 떼지 못해 지 이름 석자도 까막눈인데 이상 야릇한 이름 '사랑빤쓰' 를 외워가서 문만 열어놓고 어디론가 가서는 수다를 떨고 있을 순이엄마 기다리는 것도 참 못할 일이었습니다.

보이소오! 순이 즈그옴마~ 보이소~ 보이소오! 순이 즈그옴마~ 스물까지도 세보고.. 세다가 또 다시 소리내어 하나 둘 셋 넷.. 세고 또 세어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습니다. 대문 앞으로도 가보고 가게 앞으로 또 다시 와 봐도 순이 즈그옴마는 가게문만 열어놓고 또 부엌에서 뭘하고 있는지 아님 양철네 군이 즈그옴마하고 동네 사람들 흉보고 있는지~ 할 일이 있으면 가게 문이라도 좀 천천히 열던가..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아부지를 생각하면 얘가 타서 죽겠는데 조금은 낯 간지럽고 남사스럽기 까지한 그걸 달라기가 막상 순이 옴마가 나와도 걱정입니다. 네게 있어, 애증의 사랑빤쓰, 사론파스 (Salonpas).

 

애증의 사랑빤쓰는 내 사랑 파스가 되고

 

밉살스럽게도 순이엄마는 내가 뭘 사러왔는지 뻔히 다 알면서도 늘 같은 말로 되묻곤 합니다. '지아, 느그아부지 심부럼 왔드나? 뭐 주꼬?' 사랑빤쓰 주이소.. 야가 뭐라카노, 뭘 주라꼬? 사랑빤쓰예..

어린 마음에도 이 이름은 아닐거라는 생각에 늘 속을 간지럽히는 그 이름도 요상한 사랑빤쓰~ 냄새도 싸아하니 좋고 파아란 포장도 이쁜데 사흘이 멀다하고 다닌 심부름이지만 아직도 확실치않은 그 이름 '사랑빤쓰'

 

2000년 부터 2020년까지 우리집 석류의 변천사

 

이런 심부름은 작은 오빠가 와야 제격인데 '보소!' 순이 즈그옴마! 사랑빤쓰 한통 주이소! 암시랑토 않게 씩씩하게 큰 소리로 질러 댈텐데.. 학교에 간 오빠를 찾아가서 사달랠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심부름을 시키는 아부지도 밉고, 알면서도 매번 재미있어 끼들대며 묻는 순이엄마도 밉고, 뭐라고 씌인 건지 좀 읽어봐 달라고 해도 꿀밤만 때리고 '밤피이같은 가스내 (바보같은 기집애)' 라 상대도 않해주는 작은 오빠도 밉습니다. 엄마는 웃으시면서 '사랑빤쓰' 내 귀에는 분명 그렇게 들립니다.

아~ 만화책방에 그새 갔다 바친 돈이 얼만데 난 우짜자고 아직 한글도 모르나? 고만 가삐릿까~ 시장통 약국까지 가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래도 그 약국 아저씨는 참 좋은데! '사랑빤쓰예' 모기소리 맹키로 작게 말해도 금방 알아채리고 웃으면서 내주시면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가끔 하얀 돌사탕도 주시면서 깨먹지 말고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집에까지 가라고 하셨는데~

 

시어머님께서 어디서 받아 오셨다며 넘편이 들고온 파스

 

맘이 갈팡질팡 조바심이 날 즈음 순이 엄마는 '지아가, 뭐 주꼬?' 사랑 빤쓰 주이소! 않들린다, 야아야 아침에 느그옴마가 죽도 안멕이더나? 얼굴은 달아 올라 죽을 맛인데~ 등뒤에서 '아침부터 실없는 에편네 맹키로 얼라한테 뭔 짓하고 있노?' 우리 웃집 군이엄마다. 군이네 성님오요, 아침은 자셨능교? 어데 아까 묵었다아이가? 그란데 실없는 에편네 맹키로 얼라갖고 뭔 헛짓이고? 그러고는 둘이서 끝도 없이 누구네 집에 뭔 일이 있었고 누구네집 아버지는 어떻고~ 어린애 세워놓고 할 이야기들이 따로 있지 원!

군이 엄마하고 잠시 노닥거리던 순이네는 그제서야 생각난 듯 아참 내 정신 좀 봐라~ 지아, 니 파스 주라고 했제.. 순이엄마는 실없이 웃으며 내 애물딴지 한 통을 내온다. 파아란 셀로판 겉포장이 작은오빠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잉크병 색깔과 똑같고 햇빛에 비춰보면 눈이 시리도록 예쁘고 화한 냄새가 나는데 안티프라민처럼 코도 뻥 뚫리게 해주고 기분도 좋게 해준다.

 

어린날들에는 밥과 국과 사랑빤쓰가 다 였는데

 

젊어서 씨름도 하시고 일제때 다리 만드는데 강제소집도 당하셨다는 아부지는 멀쩡한 날씨에도 비 올것 같다시며 파스를 찾으셨다. '왜인들 이거 하나는 참 잘 만들었다' 시며 사론파스 칭찬만은 아끼지 않으셨다. 50 여년이 지나 그 때의 아버지보다도 더 나이를 먹어버린 나는 아버지보다 더 파스를 많이 붙이고 있다. 사랑빤쓰라 부르던 그 샤론파스와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큰오빠 미국방문 오실 때 빽 하나로 가득 파스를 담아 오셨는데 오래오래 참 잘 붙였는데 이젠 오빠도 가시고 한국 파스들이 아니어도 그냥 사용합니다. 일단 미국에서 한국파스는 너무 비싸 포기를 했다고나 할까요? 헌데 왜 그때 제 귀에는 사론파스가 사랑빤쓰로 들렸을까 모르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서너살만 되도 한글은 물론 영어에 컴퓨터까지 다 할 줄을 아는데 그때 제 나이 대여섯 맑고 초롱한 두눈은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고 숫기없이 꼭 다문 입은 모기가 윙윙대는 소리 만큼이나 작았던가 봅니다.

2011 년 사랑빤쓰가 고마왔던 날에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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