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봄 (Calla Lily)
이젠 옛집이 됐지만 20년도 더 전에 지인께서 검정 비닐봉지에 숨긴 듯 둘둘 말아 들고 오신 칼라 릴리 (Calla Lily). 한줌 흙에 엄지 손톱만한 알토란 몇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고 후 하던 일도 만나던 사람들도 거의 올스톱이 될 즈음이었습니다. 카라 (Calla), 칼라 릴리 (Calla Lily) 라고도 부르며 아프리카가 원산지랍니다.
카라의 꽃말은 '환희, 열정, 순수' 라는데 아마도 비말네 하얀 카라는 순수겠지요? 전에는 검색도 하고 공부도 많이 해서 포스팅으로 친절하게 잘 설명도 해 올렸는데 이제 저 자신도 헷갈려 대충합니다.
한 웅큼 손안에서 앞 뒷뜰 한 귀퉁이들을 차지한 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물도 안주고 비도 잘 오지않는 캘리포니아라 아마도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손톱만하던 딱 토란 느낌의 그 아이들이 초록색 줄기로 이파리로 카라 하얀꽃으로 뜨락 모퉁이를 채우면서 고갤 드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번식률 하나만은 세계 최고요, 그 질긴 생명력은 과히 금메달 감이었습니다.짙은 초록의 이파리에 둘러쌓인 연두 꽃대를 앞 세우고 순백의 하이얀 꽃 봉우리가 일어나는 그 모습은 '과연 생명이다, 살아 숨쉬는!' 혼자서 시인도 되고 화가도 되고 사진 작가도 되어 아이들을 가만 두지를 못합니다.
처음에는 젤로 이쁘게 피어난 순백의 아름다운 아이들한테만 마음을 주고 디카를 들이댔습니다. 조금만 시들어도 가지째 잘라 쓰레기통에 던져 넣습니다. 헌데 벌나비만 꽃을 탐하는 건 아니었던지 개미떼가 모여듭니다. 날파리도 윙윙거립니다. '뭐야?' 잠시 세상에 내려앉은 백설의 천사처럼 왔다가 누우렇게 시드는 모습은 너무도 꼴보기 싫습니다. 매일 진통제로 병든 닭처럼 꾸뻑거리는 제 모습같습니다.
칼라 릴리들을 모조리 줄기부터 꽃대까지 죄다 쳐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습니다. '이젠 다 죽어 올해는 볼수 없겠지!' 하는 체념의 한숨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연초록 연한 애기잎들을 앞세워 뽀족이 고갤 드다밀며 '안녕' 아는체를 해댑니다. '아, 카라야!' 못 볼줄 알고 마음에서 지워내려 했는데 너무도 반가와 꽃대까지 잘라냈던 지난 날을 잠시 또 잊고 맙니다. 그러다 또 변하는 그 순백의 꽃.. 참으로 빨리도 변색되고 색바래면서 마음을 달리합니다. 얼마 못가 누우렇게 색이 바래가는 그 모습은 기쁨보다 슬픔을 더 안겨주는 것 같기도 해 꽃하고는 그리 친한 편이 아닙니다.
그 후 몇 해 동안 마눌의 냉냉함에 짝꿍이 뿌리 몇 개를 마당 가운데로 옮겼던지 봉긋봉긋 새 순들이 싹을 튀웠습니다. 흙은 거짓이 없다더니 누군가의 냉정함에도 아량곳 않고 찾아와 삭막한 맘을 어루 만져주는 그 고마움에 또 깜빡 속고 맙니다. '내가 꽃을 무지 좋아하는가 보다' 고 혼자 웃습니다. 내일 아침 이 맘 때쯤이면 하이얀 꽃잎 사이를 비집고 황금색 종을 칠 준비를 하고 하얀 꽃잎을 펼치며 얼굴 내미는 고운 아기 요정이라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괜히 설레기도 합니다.
언젠가 부터는 누우렇게 시들어 죽어가는 그 모습들 조차 마음에 들어 그냥 둡니다. 개미도 앉히고 벌도 마비도 앉히면서 하얀 카라꽃의 순수를 배웁니다. 어쩌면 제 늙어가는 모습과도 조금씩 친해져 가나봅니다. 몸에 좋다면 다 기웃거려 보려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세상의 뜬 소문에도 귀를 쫑긋 세웁니다.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환희를 하얀 카라꽃에서 만납니다.
스쳐 지나는 바람에~ 마지못해 주는 물 한 모금에~ 잠시 맛 보여주는 햇살 한줌만으로도 풍성하고 아름답게 번식하는 하아얀 카라꽃 (Calla). 칼라 릴리 (Calla Lily) 가 이 봄에 유난히도 그리울 것 같습니다. 이사 나올 때 딸넴네 화분으로 된 건 거의 가져다 뒀으니 언제든 가져오면 되겠지만.. 새 집에 올 때 몇 뿌리 파서 가지고 왔는데 어느 짐속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생사도 아리까리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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