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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소녀 일탈기

하얀 카라꽃 Calla

by 비말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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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봄 (Calla Lily)

이젠 옛집이 됐지만 20년도 더 전에 지인께서 검정 비닐봉지에 숨긴 듯 둘둘 말아 들고 오신 칼라 릴리 (Calla Lily). 한줌 흙에 엄지 손톱만한 알토란 몇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고 후 하던 일도 만나던 사람들도 거의 올스톱이 될 즈음이었습니다. 카라 (Calla), 칼라 릴리 (Calla Lily) 라고도 부르며 아프리카가 원산지랍니다.

카라의 꽃말은 '환희, 열정, 순수' 라는데 아마도 비말네 하얀 카라는 순수겠지요? 전에는 검색도 하고 공부도 많이 해서 포스팅으로 친절하게 잘 설명도 해 올렸는데 이제 저 자신도 헷갈려 대충합니다.

하얀 카라꽃 Calla

한 웅큼 손안에서 앞 뒷뜰 한 귀퉁이들을 차지한 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물도 안주고 비도 잘 오지않는 캘리포니아라 아마도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손톱만하던 딱 토란 느낌의 그 아이들이 초록색 줄기로 이파리로 카라 하얀꽃으로 뜨락 모퉁이를 채우면서 고갤 드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번식률 하나만은 세계 최고요, 그 질긴 생명력은 과히 금메달 감이었습니다.짙은 초록의 이파리에 둘러쌓인 연두 꽃대를 앞 세우고 순백의 하이얀 꽃 봉우리가 일어나는 그 모습은 '과연 생명이다, 살아 숨쉬는!' 혼자서 시인도 되고 화가도 되고 사진 작가도 되어 아이들을 가만 두지를 못합니다.

캘리포니아의 봄 (Calla Lily)

처음에는 젤로 이쁘게 피어난 순백의 아름다운 아이들한테만 마음을 주고 디카를 들이댔습니다. 조금만 시들어도 가지째 잘라 쓰레기통에 던져 넣습니다. 헌데 벌나비만 꽃을 탐하는 건 아니었던지 개미떼가 모여듭니다. 날파리도 윙윙거립니다. '뭐야?' 잠시 세상에 내려앉은 백설의 천사처럼 왔다가 누우렇게 시드는 모습은 너무도 꼴보기 싫습니다. 매일 진통제로 병든 닭처럼 꾸뻑거리는 제 모습같습니다.

칼라 릴리들을 모조리 줄기부터 꽃대까지 죄다 쳐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습니다. '이젠 다 죽어 올해는 볼수 없겠지!' 하는 체념의 한숨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연초록 연한 애기잎들을 앞세워 뽀족이 고갤 드다밀며 '안녕' 아는체를 해댑니다. '아, 카라야!' 못 볼줄 알고 마음에서 지워내려 했는데 너무도 반가와 꽃대까지 잘라냈던 지난 날을 잠시 또 잊고 맙니다. 그러다 또 변하는 그 순백의 꽃.. 참으로 빨리도 변색되고 색바래면서 마음을 달리합니다. 얼마 못가 누우렇게 색이 바래가는 그 모습은 기쁨보다 슬픔을 더 안겨주는 것 같기도 해 꽃하고는 그리 친한 편이 아닙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Calla Lily

그 후 몇 해 동안 마눌의 냉냉함에 짝꿍이 뿌리 몇 개를 마당 가운데로 옮겼던지 봉긋봉긋 새 순들이 싹을 튀웠습니다. 흙은 거짓이 없다더니 누군가의 냉정함에도 아량곳 않고 찾아와 삭막한 맘을 어루 만져주는 그 고마움에 또 깜빡 속고 맙니다. '내가 꽃을 무지 좋아하는가 보다' 고 혼자 웃습니다. 내일 아침 이 맘 때쯤이면 하이얀 꽃잎 사이를 비집고 황금색 종을 칠 준비를 하고 하얀 꽃잎을 펼치며 얼굴 내미는 고운 아기 요정이라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괜히 설레기도 합니다.

시들어가는 그 꽃잎 마저도 아름답다

언젠가 부터는 누우렇게 시들어 죽어가는 그 모습들 조차 마음에 들어 그냥 둡니다. 개미도 앉히고 벌도 마비도 앉히면서 하얀 카라꽃의 순수를 배웁니다. 어쩌면 제 늙어가는 모습과도 조금씩 친해져 가나봅니다. 몸에 좋다면 다 기웃거려 보려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세상의 뜬 소문에도 귀를 쫑긋 세웁니다.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환희를 하얀 카라꽃에서 만납니다.

피고 지고 또 피며 꽃대 올리는 카라꽃

스쳐 지나는 바람에~ 마지못해 주는 물 한 모금에~ 잠시 맛 보여주는 햇살 한줌만으로도 풍성하고 아름답게 번식하는 하아얀 카라꽃 (Calla). 칼라 릴리 (Calla Lily) 가 이 봄에 유난히도 그리울 것 같습니다. 이사 나올 때 딸넴네 화분으로 된 건 거의 가져다 뒀으니 언제든 가져오면 되겠지만.. 새 집에 올 때 몇 뿌리 파서 가지고 왔는데 어느 짐속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생사도 아리까리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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