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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여자

5월 물통에 빠진 봄

by 비말 2023.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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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렌치 토스트 쏘세지 야채볶음밥

엊그제 피어난 봄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이리저리 구박덩어리처럼 뒹굴며 떠밀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봉긋 돌틈새를 비좁고 얼굴을 내밀다가 금방 또 개울가 갈대숲을 헤치고 솜털 보송거리며 강아지풀처럼 나서더니 갸날픈 모가지 외로 모로 꼬고 앉아서 웃는 듯 우는 듯 혹은 수줍은 듯.. 그 봄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밀려나는 슬픔에 이봄이 서럽다고 합니다. 5월을 이름표처럼 가슴에 달고 날아온 아이는 지가 봄인지 여름인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물통속에 빠진 봄이 흔들리며 또아리를 틀면서 빙글거립니다.

5월 물통속에 빠진 봄이 웃는 듯 우는 듯

쉴새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꽃무덤을 만들고 스치듯 지나는 바람에 사시나무 떨듯 안간힘 써대며 꽃 이파리 하나라도 좀더 함께 하려고 갸느런 줄기에 목을 메고 있습니다. 허나 어쩌랴 흔들어대는 그 마음도 만만치 않은 걸요. 이구석 저구석에 치어 박히는 것도 모자라 물통속에 코를 박고 숨죽여 웁니다. 가는 봄이 서럽다며 안타까와 우는 게지요. 물통속에서 봄이 서럽게 웁니다.

봄의 여신 머리에 얹어줄 화관인가 봅니다

같은 자리 같은 나무 둥치에서 피어난 걸 봤는데 자꾸 아니라고 우깁니다. 그러던가 말던가 봄은 물통속에서 둥둥 떠다닙니다. 아이리스 뽕나무 부겐빌리아 석류나무 석류꽃 쟈스민들이 5월 물통속에서 새롭게 봄을 꽃피웁니다. 지난 봄 다가올 봄 함께 한 이 봄들이 물통속에서 화관처럼 떠받들려 봄의 여신, 그 주인을 기다립니다.

분하다, 쟈스민차가 향기롭다고 했는데.. 다 버렸네!

이 나무 저 나무에 걸터앉던 하아얀 쟈스민꽃이 드디어 제 갈길을 찾았나 봅니다. 금사시 은사시 동아줄 하나 묶어준 페리오 나무기둥을 잡고 앉은 걸음으로 타고 오릅니다. 매년 봄이면 행사처럼 시작되는 일이긴 합니다만 보는 눈엔 분명 그 꽃인데 꽃은 지난 해 그 꽃이 아니라 우깁니다.

화분 하나로 온 앞뒷뜰을 채웠던 석류나무

무게를 못 이겨 늘어진 갸냘픈 석류나무가지 끝에서 봄이 휘청거립니다. 진홍색 석류꽃이 어여뿌게 피어 물통속에 얼굴을 빠뜨립니다. 캘리포니아의 석류가 일년에 이모작 삼모작까지 한다는 걸 알고서는 올해는 예년보다 더 일찍 가지치기를 해줬는데도 아이리스와 얼키고 설켜 오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우짜라꼬? 니들도 물통속에서 봄놀이하고 싶은 게냐?

똑 같은데 '아니랍니다' 그 봄인데 '다르답니다"

매일 건너다보는 저 유리창밖은 똑같은 나무들이 사시사철 서 있지만 혼자서 둘이서 쉬지않고 사계를 달려갑니다. 먼동과 석양, 해와 달이 같은 듯 다르게 하루를 달립니다. 물통속에 빠질 봄은 꽃모가지 뚝뚝 떨어뜨리며 소풍갈 채비들을 합니다.

야채볶음밥에 야채가 실종돼 안보입니다

후렌치 토스트에 쏘세지 야채볶음밥을 했는데 야채가 실종됐습니다. 그래도 밥맛과 빵맛이 고소하게 어우러진 그 맛에 물통속에 빠진 봄을 잠시 잊고 말았습니다. 엊그제 피어난 봄이 소리도 없이 꺽인 체 물통속에서 울고 있는 것을 못본 체하고 살짝 눈을 감아버리고 맙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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