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밥짓는 여자

비말아 흥칫뽕이다

by 비말 2023. 5. 21.
320x100

동쪽 뽕나무 기운받아 살던 날들

비말이네 뒷뜰의 뽕나무들은 자카란다, 석류, 부겐베리아들에 가려져 냉대를 받고 앞뜰의 뽕나무는 엊그제사 눈에 띄여 뒤늦게 이파리도 뺏기고 쓰다듬도 받으면서 감사인사를 소쿠리째 받으며 매일을 '안녕 하느냐' 는 속 보이는 쥔장 마눌의 인사치레와 성가스럼을 받습니다. 밤새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가지째 잘라 삶기도 합니다.

뽕나무 잎으로 만든 뽕닢전, 맛 있었습니다

2004년에 큰오라버님 미국 여행오셨을 때 보시고는 '아야, 이거 뽕나무 같다!' 그러셔서 찾아보니 진짜 뽕나무 였습니다. 그것도 상급으로 좋다는 삼지창 뽕잎이었습니다. 그 때는 긴가민가해서 큰오라버니께 저런 맛난 음식도 못해 드렸는데 아쉽습니다. 이미 먼 곳으로 소풍가신 오라버니께 택배로 보내 드릴 수도 없으니요. 뽕나무는 동쪽으로 뻗은 뿌리를 으뜸으로 친다고 하네요. 이는 동쪽을 길하게 여기는 오래된 관념 때문이랍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뽕나무에 오디가 열렸습니다

뽕나무인 줄도 모르고 키만 자라 담장을 넘는다고 눈치 받으면서 매번 잘라버렸던 나무가 물을 안줘도 어찌나 잘 자라는지 전기톱으로 잘라내야 겠다고 마음먹던 날 비둘기 세 마리가 앉아 바닥을 깁니다. 느낌상 어미새와 두 아이, 가까이 가서 인기척을 내도 도망도 안갑니다. 자꾸 이상한 벌레들이 기어 다녀 기겁을 하며 치웠는데 그게 명주실을 만들어 낸다는 누에고치.. 애벨레였던가 봅니다.

특별한 야채들 없이 뽕닢과 콩나물 노란무 고추장

오며가며 곁을 스치다 보니 어미새는 간 곳 없고 아기새 둘만 남았는데 한 마리가 얼킨 나무줄기에 걸려 허우적댑니다. 짝꿍을 불러 어째야 될지 고민하다가 삽을 살짝 놓으니 거기에 앉습니다. 다시 지들 있던 곳에 놔아주고 어미새를 나무라며 '누구한테 애들을 맡겨!' 궁시렁거리자 짝꿍 웃으면서 '니가 본 거지 어미새가 부탁한 건 아니지?' 맞는 말이긴 하지만 큰일날 뻔 한 생각을 하니 괜히 속이 상합니다. 뽕잎 어딘가에 있을 누에, 애벌레를 찾아 먹으라는 거 였을까요?

텃밭에서 한 웅큼 뜯어다 만든 실파와 양파로 양념장

어느한 때 색바랜 편지방에는 뽕나무 앞으로 온갖것을 다 만들어 내며 난리굿을 해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겨우내 잘 견뎌준 중간치들 밖엔 없지만 파릇한 잎에 벌써 혓끝이 먼저 낼름거립니다. 뽕닢들을 흝어 된장찌개에도 넣고 전도 부치고 팬케익가루, 밀가루, 튀김가루로 계란옷 입혀 튀겨도 보면서 목숨을 걸고 (?) 온갖 쑈를 해대면서 텃밭에서 실날같은 파 한줌 뜯어다가 양념장 만들어놓고 매일이 흥칫뽕이었습니다.

뽕닢으로 온갖 요시락으로 도시락을 싸던 날들

인터넷 사전에 뽕나무는 동쪽으로 뻗은 뿌리가 좋다고 했는데 솔직히 뿌린지 줄기인지는 모르겠고 비말네 뜨락의 뽕들은 모두 동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하는 고향의 봄 노래처럼 지나고 나니 다 귀하고 그리운 것들 투성입니다. 이제 싹 틔운 풀꽃나무들은 언제나 그 이름값을 할지 내 생전에 볼 수나 있을런지.. 갑자기 백살도 넘은 할매 흉내를 내자 넘편은 피식 웃기만 합니다. 이미 오래전 해먹고 포스팅으로 올려졌던 흥칫뽕 사진들 몇 추려서 올리며 추억놀이 합니다.

비말 飛沫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