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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소녀 일탈기

아버지 기일에는

by 비말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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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묶어 올리고

진달래 개나리 꽃 소식이 들려올 즈음이면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고 나무 심는 날이면 바로 그 날입니다. 이젠 언니의 흑백 결혼 사진에서 뵌 모습만이 다인 양 기억되는 아버지. 하얀 두루마기와 찐 밤색 중절모, 마고자의 호박색 단추가 너무 탐났던.. 용돈으로 사 드린 밍크털 모자를 겨울 지나 봄꽃들이 질 때까지 써고 다니시면서 '우리 막내딸이 사줬다' 자랑하셨다던 그런 날이 이 봄에도 또 꽃소식처럼 살아납니다. 평생 쪽진 엄마 머리만 보셔서 그런지 아버지는 머리 풀고 다니는 걸 별로라 하셨는데 이번 아버지 기일에는 올림머리를 하고 하루 종일 묶은 체 그냥 뒀습니다.

틀어서 올릴 머리카락도 없어요

올림머리가 거의 ‘국민혐오 단어 수준’ 이 됐다는 글을 읽으면서 얼른 올렸던 머리의 고무줄을 풀어 내립니다. 어쩌다가 올림머리가 그렇게 까지.. 이순넘은 여자의 거울앞에서 꾸며지지않은 모습을 보면서 울엄마 늘 하시던 말씀을 꺼내 새깁니다. ‘여자 나이 스물이 넘으면 스스로가 책임지고 가꿔야 한다.’ 셨는데 육십도 넘은 나는 뭔 배짱으로 민낯으로 입술에 색깔도 안입히고 머리카락 주먹안에 대충대강 쓸어 올려 둘둘 말아 올리기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꾸미는 것도 죄라면 그 또한 게으름 핀 죈데 여자로 태어나 거울앞에서 곱게 꾸미고 나서는 것이 미덕이라면.. 저는 참말로 큰 죄를 짓고 삽니다.

진달래 개나리 대신 쟈스민과 석류꽃

살아가면서 또 살아내면서 하루 이틀 사흘 매일이 다르고 어제 지내 보내고 오늘을 맞고 또 내일을 기다리면서 후회도 반성도 희망도 하나 없다면 그거야 살아 있으되 산 것이 아니고 주검보다 못한 삶 일진대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날은 가슴도 멍멍하고 아픕니다. 봄이 오는 길목을 지키다 만나진 아이들이 서로 얼싸안고 엉키고 설킨 체 춤을 춥니다. 작년여름 가을 내내 함께 하다 아쉬운 이별도 못한 체 흐지부지 헤어졌다 죽은 듯 다시 살아 났으니 반갑겠지요.

아버지 기일 상차림은 아니고요

늘 단정하게 머리를 틀어 올리시던 그 분은.. 어쩌다가 곁에 사람 하나 제대로 못 두고 그 오랜 세월을 온화하고 고운 미소속에 눈물도 아픔도 다 숨겨 두셨다가 이제서야 드러내셨을까~ 법정에 나서시는 뉴스에 잠시 비췬 모습에서 억장이 무너집니다. 누가 쓰다듬어 올려주지 않더라도 당신의 손바닥으로 빗질하여 올려 묶으시지.. 태극기를 들고 흔들지도 촛불을 켜고 두 손 모으지도 못했지만 사랑하는 마음, 아픈 마음, 생각하는 마음 조차 없을까~ 지난 글 포스팅에서 전직 대통령님에 대해 썼던 글을 만납니다. 뜬금없이 바뀌는 비말네 글이 어제 오늘 일 아니시니 이해해 주시라 믿으면서요.

물위에 든 반영처럼 거꾸로의 삶

'머리카락은 부모상을 당해야만 풀어 헤치는 거다’오래전에 식목일 날 훌훌 떠나신 아버지께서는 추운 겨울날 긴 머리를 말리느라 물방울 뚝뚝 떨어뜨리며 햇볕에 나앉아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있으면 호통을 치시곤 하셨습니다. 아버지 기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닌 듯 한데 괜히 맘 쿨쩍거리면서 컴화면을 거울삼아 머리카락을 불끈 잡아 끌어올려 다시 묶습니다. 청개구리 막내딸은 아버지 기일에는 올림머리를 하고 종일을 보냈습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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