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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짓는 여자

야채죽과 윤동주 자화상 (自畵像)

by 비말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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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죽과 윤동주 자화상 (自畵像)

하다 하다가 이젠 야채죽 끓이는 공부를 다합니다. 냉장고 두 개가 꽉 차서 처음 넣은 것들이 어디에 박혔는지도 모르게 빽빽해져 있는데 한국장 바리바리 사들고 온 건 모셔두고 자꾸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들이 일과 중 하나가 된지도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 (自畵像) 처럼 불쌍한 늙은 남자 하나 더 만들면 안될 것 같아 블방 댓답글 조금씩 줄이고 '죽 끓이는 방법' 인터넷을 찾아 헤맵니다. 아직 새벽이라 사진색은 마음에 안들지만 맛나게 먹는 넘편을 보면서 잠시 흐뭇해 하기도 합니다.

 

야채죽과 윤동주 자화상 (自畵像) 과 죽상

진즉에 이런저런 부엌일들 제대로 배워 뒀더라면 이 늙으막이 얼마나 쉬웠을까를 반성도 푸념도 아니게 혼자 옹알이하는 날들이 잦아집니다. '그냥 둬, 힘들게 왜 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먹으면서 연신 '아, 맛있다!' 그러는데 어찌 공부를 안하고 밥상을 따로 차려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짜로 죽 끓듯이 합니다

윤동주 자화상 (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시 (1939년)/ Korea Golden Poems (Self-Portrait)/ 한국의 명시 (58 -5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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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고추장과 양념간장, 치커리 콩나물

기본으로 만들어 둔 양념고추장과 양념간장이 효녀로 거듭나 줍니다. 나를 기억해 주든 아니던 내 나고 자란 내 나라 장맛들, 한국의 된장 고추장 간장 그리고 깨알같은 맛을 내주는 깨소금 참기름 소금들이 참 고맙습니다. '이젠 나도 한식 요리사네?' 혼잣말로 하는 걸 넘편은 스치 듯 듣고 '그럼~ 그럼~' 우스갯 말로 놀립니다.

 

양파 (Onion) 와 방울 양배추 (Brussel Sprouts)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뭔가가 많고 넉넉하면 늘 실패작을 만들어 내는 마늘은 오늘은 '저얼대로 그러지 말자!' 면서 딱 세 가지만 내놓습니다. 엊저녁 불려둔 쌀 (Rice) 과 양파 (Onion) 와 방울 양배추 (Brussel Sprouts) 들을 가지고 요리쿡 조리쿡 해댑니다.

죽 끓듯이 한다더니 튀긴 솥단지속 내용물들에 몇 번씩이나 귓싸데기 맞아가면서 멀리서 가까이서 사진찍다 또 한번 난리굿을 치뤄기도 합니다.

 

야채죽과 윤동주 자화상 (自畵像)과 넘편의 죽상

$1,000도 넘게 사다둔 온갖 생선 고기들 그리고 잘 익은 배추김치 석박김치는 누가 먹으라고 달랑 간장종지 하나에 소박한 밥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 멀끄럼한 간장이 비싼 간장게장으로 $26 짜리입니다. 미국마켓에서 사온 거 였으면 바로 가서 반납하고 돈 물어왔을 거지만 눈 딱감고 그냥 먹습니다. 손질도 잘 않된 것 같은 게는 저도 못 씹겠기에 일단 그냥 둡니다.

비말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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