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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소녀 일탈기

왕호박과의 만남

by 비말 2024. 9. 30.

호박꽃이 꽃중의 꽃이라며 어느한 때는 온 뜨락을 호박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호박이 넝쿨째 굴러다니던 비말네 뜨락, 그린 커버로 풀인 양 꽃인 듯 바닥을 기던 초록이들 틈에서 왕호박 하나가 그 위용을 자랑하던 2010년 대 어느 날의 사진하나를 또 만납니다.

어릴 때 통영에서 친구들 집에 가면 가을걷이로 컴컴한 방 구석을 채우고 있던 안지도 못할 만큼 큰호박들이 참 부러웠는데 그런 호박하나 키워내고 잠을 설쳤던 시간들 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말네 뜨락에서 만난 순호박, 비말이 왕호박이 J블로그 글친구님들 넉살에 대화란이 시끌했던 시간들을 잠시 떠올리기도 하면서 '옛날은 가도 추억은 남는 거 여름날의..' 제목도 오리무중인 노래 하나가 방언처럼 터져 나옵니다.

비말네 뜨락 초록숲에서 만난 왕호박
비말네 뜨락 초록숲에서 만난 왕호박

코요테 (coyote) 호박

지난 8월 말, 티스토리 포스팅으로 올렸던 돌산에서 업어온 산호박을 응접실에서 화초로만 보고 있다가 마음을 정합니다. 뜨락 한 구석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면서 '한 알의 씨가..' 죽어서 다시 만나든지 그대로 남아 거름이 되던지~ 기약도 없는 이별을 고합니다.

'호박이니? 참외니' 하던 아이들 정체를 알아내고 사람이 먹는 건 아니고 동물들 사료들로 사용된다는 거에 살짝 아쉬워도 하면서요. '코요테 호박 (coyote squash), 코요테 멜론 (coyote melon). 혹은 코요테 고드 (coyote gourd) 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네 시작은 별로 였으나 그 끝은 창대 했노라
네 시작은 별로 였으나 그 끝은 창대 했노라



*Cucurbita palmata' 라고도 부른다는 코요테 호박은 미국 남서부 (캘리포니아) 와 멕시코 북서부가 원산지이며 자갈들이 많고 건조하며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 자란다고 하니 아마도 돌산에서도 이뿌게 화초처럼 자랐던가 봅니다. 1876년 Sereno Watson 이 처음으로 식별했다고 하는데 비말이는 2024년 8월에 첨으로 알아졌네요.

왕언니, 비말네 왕호박이 그 위용을 자랑하던
왕언니, 비말네 왕호박이 그 위용을 자랑하던

비말네 뜨락 왕호박

비말네 왕호박, 아쉽게도 다른 사진들은 어디에 숨겨뒀는지 블방 포스팅으로도 많이 올렸는데 크기도 두께도 오리무중이지만 엄청 컸더랬습니다. 세월따라 시간속으로 지구별을 떠난 그 무게가 벅차게 가슴을 파고 듭니다. 지금봐도 색도 이뿌고 결도 고운 게 '너, 내꺼하자!' 누구도 아무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비쥬얼 입니다.

1원도 안들이고 정성으로 가꿔낸 비말네 뜨락
1원도 안들이고 정성으로 가꿔낸 비말네 뜨락



침대에 누워서~ 창가로 벽잡고 기다시피.. 하면서 창밖만 내다보다가 어느 날 두 발로 걸어나가 밥숫갈로 땅을 파며 씨앗도 묻고 양파 뿌리도 잘라 숨기면서 땅도 살리고 비말이도 살아났던 희망의 땅~ 비말네 뜨락의 어느 새벽은 두근거림과 속삭임으로 아침을 열면서 '살아있네!' 환희에 들떠기도 합니다.

추석에 부침개로 해먹던 한국 호박 같아서
추석에 부침개로 해먹던 한국 호박 같아서



미주 중앙일보 신문지를 깔개로 다육이들과 그린 커버들 다 물리치고 우뚝솟은 비말이 왕호박, 대접받는 호박, 쟈가 너무 부럽다시며 너스레 떨어대시던 비말이 J블방 글친구님들..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사계가 스치 듯 지나고 강산도 몸맘 바꿔 변한다는 십년이 넘어도 빛바랜 사진속 왕호박처럼 살아있는 날 오늘은 행복추억으로 함께 합니다.

허리뼈 부러졌던 비말이는 한번도 못 들어봤던
허리뼈 부러졌던 비말이는 한번도 못 들어봤던

왕호박 궁뎅이 헌신문지

'그건 또 뭐야?' 곁을 스치던 넘편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으면서 묻습니다. '울집 왕호박!' 돌리던 몸을 다시 앉히며 반가운 듯 화면에 얼굴을 대면서 아픈 기억도 함께 떠올리나 봅니다. '물많이 준다' 고 구박도 많이 하더니 저 혼자 키운 것처럼 좋아라 하는 마눌이 살짝 얄미운가 봅니다.

손가락으로 둥굴~ 덩굴~ 사진속에서 굴립니다
손가락으로 둥굴~ 덩굴~ 사진속에서 굴립니다



노오랗게 손톱만한 꽃이 핀 호박줄기에 수돗물을 방화수처럼 쏟아 붓는데 놀래 '하지마아~' 창안의 여자는 창밖의 남자를 향해 악을 써대는 날들도 있었더랬습니다. 뭐든 챙기고 많이 주면 다 좋은 줄 알던 뜨락 무식자.. 이젠 둘다 그런 날들 잊고 사는지 기계적으로~ 자동으로.. 그러면서 '너 거기 있었니?' 풀꽃나무들을 Dog시무룩해 하는 시간들 입니다.

보라색 무궁화꽃이 '꽃중의 꽃' 우리나라 꽃이라 귀하게 여겼던 초창기 이민생활에 황금색 호박꽃이 늘 함께 해줘서 고맙고 감사했던 바쁘고 지쳤던 젊은 날들이 이젠 다시 돌아와 거울앞에 앉은 내 언니같은.. 왕호박 궁뎅이에 받혀진 낡은 신문지 역활도 마다치 않으며 '아이엠 그라운드' 더운 여름 죽은 듯 숨어있던 호박싹이 싹틔어 잎이 나는 걸 보면서 또 다른 게임에 몰두하는 색바랜 편지를 들고 선 비말입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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