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지나고 남들 벗고 다니는데 혼자만 껴입긴 남사스러워 입었던 겉옷 벗어제끼고 가뿐하게 길 나섰다가 된서리 맞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워도 참아보자며 가벼운 패딩에 문밖 나섰다가 더위에 질식할뻔 합니다.
블방 사진 찍으라고 유리창 열심히 닦아대던 넘편은 멀쩡한 자동차 세차하느라 바쁜데 아직은 겨울 커튼 드리운 통유리문이 엊그제 비로 뗏물이 꼬질꼬질 합니다. 개나리도 진달래는 없지만 노오란 햇살이 창을 두들기는 봄날입니다.
창밖에 꽃피는 봄날 문 닫고 엄동을 사는 무명, 그 어두움/ In springtime when flowers bloom outside the window/ The bscurity-the darkness/ When they survive a rigorous winter, closing the door.
소리 하나 (이철수)/ 노랑 개나리 같은 봄 햇살이 창호에서 떠날 줄 모르니 도리 없어서 방문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새 있고 꽃 있고 바람 있고, 해지면 달도 별도 있는 자리에/ 한낮에는 힘겨운 노동이 있는 자리에, 풀싹들 돋기 시작합니다.
공기도 달콤한 봄날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책 읽다 졸았습니다/ 그 창만 열면 연둣빛 봄날입니다. 책에서도 가끔은 마음/ 환해지는 순간을 만나지만 이 봄날 같지는 않습니다/ 봄 냄새 나면 봄싹처럼 문 열고 나서야 합니다./ 이철수 판화산문집/ 20, 21쪽
멀리서 보면 하늘인데 가까이 다가서면 가느란 나무가지를 타고 싹틔운 잎들이 생명줄 늘이고 안간힘들을 쏟아냅니다. 겨우내 잎하나 없이 잔바람에도 휘청대던 물오른 뽕나무에 생명의 소리가 들리고 보입니다.
58그루의 새싹들이 지난 여름 태양에 말라죽고, 겨울 찬 바람에 뿌리째 뽑혀 죽어간 동료들 대신 이 봄에는 비말이 염원처럼 여덟개라도 살아내자며 옮겨준 자리를 벗어나지않고 앉은 체 하늘을 향해 오릅니다. 한 줄 꺽어다 심고 딱 한번 꽃을 보여준 금은화 넝쿨이 알로에 목을 칭칭 감아오릅니다.
그러든가 말던가.. 알로에는 꽃봉오리 올리며 나 잡아봐라 합니다. 비말뜨락 알로에들이 가시로 뿌리로 그 줄기로 '나도 좀 봐 주세요' 하는데 숨어 핀 꽃볼오리 까딱했으면 놓칠뻔 합니다.
예전 집 뜨락의 안방 창밖의 알로에들은 주황색 꽃으로 긴 주황색 꽃대를 올린 체 허밍버드들의 먹이가 돼 주며 밤낮을 바쁘게 살았는데요. 기약없는 봄, 창밖 꽃피는 봄날이 와도 알로에 꽃없는 봄입니다. 참새 방앗간도 없는 수다방가는 참새들 스쳐지납니다.
병든 달구Saeggi처럼 졸다 선잠깬 눈으로 입가에 흘린침 남의 것인 양 훔쳐내고 사진속 설화같은 이야기들을 몽롱한 눈으로 흘겨봅니다. 봄같지도 않은 봄날이라도 봄 냄새나면 봄싹처럼 문 열고 나서야 한다고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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