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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는 여자

기다려주지 않는 것들

by 비말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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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주지 않는 것들

 

페리오문을 열고 헐거운 슬리퍼 양말에는 벗겨질까 맨발로 질질 끌면서 몇 발짝 돌아서다 만나지는 뒷뜰의 풀꽃나무들이 그냥 있으려니 하며 무심코 스치던 날들도 많았는데 이젠 그 조차도 추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방안의 창안에서 블라인드 올리고 커튼 양옆으로 활짝 제치고 유리창에 이마 짓찧어가며 만나지던 아침이 늘 반가왔는데 이젠 꿈에선가 싶기도 합니다. 호미질 삽질 톱질로 지쳐가던 그런 날들이 그리울 거 라고는 셍각도 안해 봤습니다. 언제나 손뻗고 맘주면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나이 한살씩 보태지면서 더는 기다려주지 않는 것들이 많아지는 걸 매분매초 몸으로 맘으로 알아집니다.

 

기다려주지 않는 것들과 함께 하는 것들

키친으로 달려나가 블라인드를 올리면 보일 듯 말듯 감질나게 만나지던 서쪽하늘이 '얼릉 나와 봐!' 꼬시듯이 손짓하는 하늘과 풀꽃나무들이 키재기하며 '나 좀 봐줘!' 합니다. 종내에는 페리오문을 박차고 맨발의 디바처럼 뛰쳐 나가고 맙니다. 아직은 찬 기운에 발끝을 오그리며 질질끌던 슬리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요.

나무로 밥 빌어먹고 사는 옆집 (조경 회사) 라티노 가족들은 한국 사람들에 남다른 적개심이 있어 처음 이사와서는 지들끼리 키들거리며 우리 흉을 보는 것도 같았습니다. 처음 불법으로 미국에 와서 한국인 가게에서 일을 할 때 '안달레 안달레 (빨리 빨리)' 와 '험한 욕' 들을 젤로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나중 친해지고 나서 '너희는 다르네?' 그러면서 얘기해 줬습니다. 더러 그런 한국분들 많았습니다. 요즘은 그러다가 큰 일 치뤄는 분들 많겠지만요.

 

옆집에서 빈화분들 100개도 넘게 줘 만든 꽃나무화분들

어느 날 앞뜰에서 풀을 뽑는데 옆집 드라이브웨이 (Driveway) 에서 시끄럽게 몇 대의 추럭들을 세워놓고 자동차옆에 기대서서 난리굿들을 해대는데 아무도 없길래 시작한 일들이라 그냥 두고 들어올 수도 없어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이젠 아예 마시던 맥주병을 울집 꽃나무 울타리에 푹박아 꽂습니다. 덩치는 산만한 시커머 죽죽한 멕시칸들은 알고 나면 착하고 순박한 이들도 많지만 그냥 만나지면 겁 납니다. '헤이, 아미고! (Hey Amigo!)' 깜짝들 놀래 자기들 귀를 의심하면서 어쩔 줄 몰라들 합니다. '애들아!' 내가 언어영역에 그 편한 한국어 (Korean) 를 배제하고 스페인어 (Spanish) 를 택한 걸 몰랐지? 이런 날을 대비해서 해뒀지만 이렇게 '적절하게 써 먹을 줄은 몰랐네!' 물론 책 두권을 다 떼고도 영어에 가려 거의 잊어버리긴 해서도 가는 귀 오는 말로 조금씩은 다 들었습니다.

누군가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덩치 젤로 큰 집주인 남자를 데리고 나옵니다. 다짜고짜 사과부터 합니다. 이렇고 저런 사연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해서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집은 친해졌습니다. 아직은 기저귀 찬 두 살배기 아가부터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티 칼레지 갈 거라며 양아버지 따라 일 다니는 큰아들까지 한달에 두어번은 빵을 구워 먹이며 크고 작은 도움들도 줬습니다. 물론 그들도 그리 했고요. 기저귀 찼던 막내가 대학교에 갈 때까지 였으니 울 가족들보다 더 가깝고 오래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고국의 가족들은 '하매나' 하며 기다리고.. 오지않는 막내동생을 기다리시다 끝내 혼자 먼저 하늘나라 소풍 떠나신 큰오라버니께는 죄송했지만요.

 

반공호를 만들면 어떨까? 호미질 삽질로 파고 또 파서

어느 날 뜨락으로 두더지 한 마리가 숨어들어 하룻밤 자고 나면 작은 무덤들을 셀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온 텃밭을 아작을 내놓았는데 그 구멍들 따라 다니며 막다가 생각해 낸 것이 ‘반공호를 만들면 어떨까?’ 였습니다. 매분매초 이상한 발상들을 해내는 마눌이 살살 버거워지기도 할 넘편한테 말했더니 짝꿍은 ‘미.쳤.냐?’ 그러든가 말던가 시작을 하고 호미질 삽질을 해대니 말리다가 동참을 합니다. 어느 만큼 파고 나서 쪼그리고 앉아보니 바람도 햇살도 막아주고 아늑한 게 참 좋습니다. ‘내 무덤이면 참 좋겠다’ 깜놀한 넘편이 놀래 쳐다봅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둥치로 옆벽을 막고

땅을 골라놓고 지난번 잘라둔 사이프러스 나무둥치로 옆벽을 막고 흙을 덮으니 그럴 듯 했는데 블방질하느라 한눈 판 사이 파둔 방공호안에 화분들로 꽉 들어찼습니다. '진짜 내 무덤이라도 만들까 놀랬나?' 돈주고 시켜야 할 사람들 안부르고 혼자 기를 써대며 하는 마눌 말리던 넘편은 이젠 자기가 더 악을 써대며 떰범벅이 되어 괭이질까지 해대며 전기 톱으로 손 톱으로 동서남북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난리굿을 치며 혼자 바쁩니다.

 

Oven & Baked Sandwich (오븐 베이크드 샌드위치)

어제 텃밭을 기다가 만난 푸성귀들을 뜯어다 씻어 냉장고에 넣어 뒀더니 넘편은 그예 먼저 선수를 칩니다. 치커리 깻잎 실파들을 내놓으면서 사진을 찍어랍니다. ‘어, 그것들 점심에 쓸 건데?’ 그러면서 마눌은 또 찍으란다고 찍습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Oven Baked Sandwich (오븐 베이크드 샌드위치) 로 아침을 얻어 먹었으니 점심은 제 차례로 더 맛나고 좋은 걸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지도 않는 것들을 기다리며 몸맘 '아파라' 하지말고 눈앞에서 함께 해주는 모든 것들과 함께 '세월아, 가자' 그러면서 마음을 다독입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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