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짓는 여자

유카나무위 새둥지

by 비말 2023. 5. 6.
320x100

용꼬리 닭머리로 새둥지 짓던 날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요며칠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자카란다 나무잎을 쓸어 모으면서 걱정이 되어 올려다 봅니다. 유난히도 바람 잘 날 없었던 지난 4 월 나무잎은 누우렇게 변하고 줄기는 말라가는데.. '애야, 너는 언제 알을 깨고 나올래?' 키만 훌쩍 커버린 자카란다 갸냘픈 가지위에 묵직하게 걸쳐진 새둥지를 보면서 넘편과 마늘과 강쥐 바둑이는 이 오월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 버드 헤더야, 우짜자고 거기에 둥지를 털었니?' 옆집 냥이뇬 지키는 울집 강쥐 바둑이는 어미새와 아비새가 한번씩 오갈 때마다 턱도 없이 높기만 한 나무위를 바라보며 한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어미새가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볼수도 만질 수도 보이지도 않는 새둥지를 고개 아프게 올려다 보면서 아랫동네 세 식구는 밤낮으로 노심초사합니다. 그저 멀찍이 서서 '괜찮니? 살아있니?' 저 둥지속에 알이나 있나~ 깨지지는 않았나~ 숨조차 멈춰고 올려다 봅니다.

자카란다 나무밑에서 불철주야 새둥지 지키던

새벽에 컴컴한 창밖의 자카란다 나무위 새커만 덩어리만 보여 '괜찮구나!' 했고 아침준비할 때까지도 잘 메달려 있었는데 아침을 먹다 무심코 부엌 창밖을 내다 보다가 놀래서 먹던 밥수저를 집어던지고 뛰어나갑니다. 짝꿍도 '왜? 왜? 뭐야!' 같이 페리오문 밖으로 따라 나섭니다. 지난 몇 해 동안 내내 바둑이가 올라서서 땡볕도 마다않고 지켜주던 그 돌 테이블위에 처참하게 내동댕이 쳐진 새둥지가 보입니다. 우선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제일 만만해 보이는 유카나무 위에 대충 올려 안착 시켜줍니다.

새둥지가 이리 생겼습니다, 온갖 것 다 물어다!

밥이나 먹고 어떻게 해보자고 들어와 창밖을 내다보는데 어디선가 십수 마리의 작은 새들이 자카란다 나무와 유카나무 사이를 맴돌다 다 날아가고 한 마리가 알로에 마른가지에 앉아 카메라 가지고 오는 동안에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미새일까? 동시에 생각이 멈춰고 먹던 그릇들 대충 설겆이 마무리하고 채비를 하고 나섭니다. 날씨도 꾸무레한데 비 오기전에 얼릉 뭔가를 해야 겠다는 마음에 의논이고 뭐고도 없이 사다리 두개도 챙겨 세우고 비닐도 가져다놓고 연장들 챙겨 일을 진행합니다.

바둑이는 돌테이블에서 나무위 새둥지를 지켰는데

늘 엊갈리는 일기예보를 반쯤만 믿고 있었는데 빗방울이 그예 떨어지고 바람까지 불어 비닐을 묶는 손들이 더딥니다. 사닥다리들을 부겐베리아와 무화과나무에 꽁꽁 묶어 중간에 사닥다리들 놓고 안전 점검을 하는 동안 이러쿵저러쿵 ‘이래야 된다, 아니다’ 흠뻑젖은 사람 둘이서 새집하나 옮겨 앉히면서 난리굿을 춰대기도 했습니다.

돈 받고는 안할 일들이라 더 열심들 입니다

새벽에도 새둥지가 무사한지 걱정에 아닌척 번갈아 나가 부엌창으로 내다보면서 '괜찮은 것 같아!' 한마디씩 던지듯 알려주고는 아침을 기다립니다. 하늘높이 뻗친 자카란다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지 보랏빛 꽃을 피운 체 물그러미 건너편 유카나무위 새둥지를 지켜봐 주고 있었습니다.

어미새가 자주와서 알로에 꽃에 앉아 절을 합니다

'그런데 새한테 뭘 먹여야 되지?' 갑자기 또 다른 걱정에 묻습니다. '왜 이래? 새 아직 알 속에 있어, 아무것도 못 먹는!' 백가지도 넘는 생각들이 작은 닭머리속에서 생난리를 쳐대니 용꼬리가 정리를 잘해 줍니다. 그래도 잠깐씩 생각이 널뛰기를 해댑니다. 꿈꾸는 늘근소녀는 혹시 연흥부네가 얻은 그 박씨를 물고와 줄지도 모른다면서 어미새 아비새가 오가는 걸 유심히 바라봅니다. 짝꿍 왈, '바랠 걸 바라지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네!' 그러면서 또 놀립니다.

치즈 오믈렛에 프랭크햄, 야채볶음이 먹을만 했네요

치즈 오믈렛에 해쉬브라운, 프랭크햄, 이런저런 야채볶음으로 어제 수고한 우리 세 식구의 아침식사는 환하게 솟아 오른 아침해와 함께 기분좋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미새는 그 작은 구멍 사이로 들락거리며 조금은 안정된 듯 여유있게 빼종거리며 가슴에 빛날 빠알간 카네이션을 기대하나 봅니다. 일은 우리가 했는데 '애, 버드 헤드야 꿈깨!' 좋은 일 하고 나면 밥맛도 빵맛도 꿀맛입니다. *새둥지 짓는 닭이라는 제목으로 어느해 5월 어버이 날에 올린 글입니다.

비말 飛沫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