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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여자

코스모스 철길 시골 기차역

by 비말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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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철길 시골 기차역

그 날도 오늘처럼 햇살이 곱던 1976년 시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모여든 친구들의 성화에 가족들까지 '다녀오지 그러냐?' 등을 떠미니 못 이기는 체 함께 떠난 가을 여행, 산도 들도 나무도 물도 함께 어우러진 그곳엔 기찻길옆 오두막집도 있었고 끝없이 뻗어나간 철로도 자갈깔린 철길 양옆으로 코스모스가 지들 맘데로 색깔대로 들쑥날쑥 흩뿌려진 듯 바람따라 하느작거리고 있었다.

갈 때는 왁작지껄 함께 간 친구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낚시를 하고 더러는 옷을 입은 체로 물에 뛰어들어 뗏깔 고운 돌멩이와 고동도 줍고 혹은 돌을 주어다 아궁이를 만들어 때 이른 점심준비도 하고 끼들거리며 뭐가 그리도 즐거웠던지~ 요즘 같았으면 스맛폰 들고 카메라 들고 사진찍느라 난리 부르스들을 쳐댔을 텐데. 평소에 조용하던 한 친구가 코스모스 철길을 걷자고 어깨를 툭 치길래 두 처자는 코스모스 철길을 밭밑의 자갈 밟히는 소리들만 세면서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한들한들 손짓하는 코스모스

딸이 왕송호수의 사진을 보내왔다. 카톡으로. 요새 그곳에 예쁜 카페들이 생겨서 친구와 다녀왔노라고. 내년에는 갈수 있겠지... 핑크뮬리도 아직 싱싱하고 하늘도 곱고 물도 맑네 집에서 그리

ohokja1940.tistory.com

데레사님 따님께서 왕송호수에서
어머님께 카톡으로 보내주신 코스모스

 


말이 없어도 차고 넘칠 것 같은 시혼 (詩魂) 으로 온 가슴을 채우면서 얼마를 걸었던지.. 발 밑에 느껴지는 자갈들의 감각이 아픔으로 다가올 즈음 끝도 안보이는 철길 위에 나 혼자 버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 채렸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와 버렸고 때가 많이 늦어 있었다는 것을.. '야~ 이 미.친.년.아, 빨리 올라 타아~ 안 타?'

고래고래 악을 써대며 우악스럽게 달랑 들어 올리듯 내 몸을 차 안으로 끌어 올려 구석에 던지듯 내동댕이 치고는 '재수 더럽게~ 퉤!' 눈에 핏발이 선 남자가 창밖으로 가래를 뱉아낸다. 기차가 급정거를 하고 기관사 아저씨의 붉으락 푸르락 험상궂게 일그러진 얼굴이 금방이라도 우악스런 그 손으로 내리칠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들은 얘기로 기차는 웬만해서 급정거를 할 수 없다고 했는데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선잠을 자다 깨난 것처럼 머엉~

 

고개를 숙이고 몸을 외로꼬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한 체 죄인처럼 앉아 끌려 (실려) 가서 맡겨진 곳이 조그만 간이역의 맘씨좋게 생긴 역장님께~ 모자를 벗어 다시 고쳐 써시며 살짝 웃으시는 그 분은 머리칼이 반백이 다 되신 60 가까이 돼 보이는 할아버지셨다.  짧은 시간 대충 설명을 하며 짐짝 내려놓 듯 나를 맡기고 뒤돌아가는 기관사 아저씨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려 식식거렸고 역장님은 '아가씨가 많이 놀랜 것 같네! 이쁘게 생긴 아가씨가 왜 그런 험한 생각을.. '자살, 내가?' 도대체 뭔 말인지. '야, 이.년.아. 뒤질려면 너나 뒈지지 누구 신세 망칠려고' 아까 그 기관사 아저씨가 악을 써댔던 말이.. '아~ 그 소리 였구나!' 혼이 빠져 나가고 너무 챙피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조금 전까지의 상황, '내가 자살 미수자 였구나!' 그제서야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 몸의 기운이 쫘악 빠져 나간다.

 

 

'아가씨 집에 연락이라도 하지? 곧 지서 김순경이 올텐데..' 작은 동네라 다들 잘 아시나보다. 이런 일을 사방팔방에 알려 공개 망신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혼자 해결해 보려 입 꼬옥 다문 체 버틴다. '뭔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험한 일은 면했으니 마시게나!' 주전자에서 물 한컵을 딸아 주신다. 이렇게 저렇게 얼래고 달래봐도 꿀먹은 벙어리. 역장님은 다음 기차가 올 시간이라며 밖으로 나가신다.

 

 

'으아악~ 이 무슨 꼴이람.. 진짜로 죽고 싶다!' 이 와중에 배는 또 왜 고픈지, 목도 마르고 입술은 바짝 말라 바스락 소리가 날 지경이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앉은뱅이 책상옆에 놓여있는 흙 묻은 흰고무신 한 켤레가 눈에 띈다. 그 구석엔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납짝하게 솔이 옆으로 드러누운 칫솔이 이가 나간 접시에 빨래비누와 함께 담겨있다. 흙 묻은 흰고무신과 비누 든 접시를 들고 냇가로 향한다. 마른 흙을 대충 털어내고 안창까지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칫솔질을 해댄다.

아까 내가 있던 곳과는 너무도 다르게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다. 햇살도 적당하게 내리쬐고 사방은 내 손 놀림에 튕겨져 나간 물소리만이 퐁당거리며 울려 퍼지는데 '이런 곳에 살고 싶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지 처지가 어떤 상황인지도 잠시 잊고 맘이 딴청이다. 여전히 평안한 얼굴의 역장님께서 '아가씨, 여기서 뭐해? 김순경 왔는데' 꼭 집에서 보호자가 데리려 왔다고 알려주는 것처럼 정답게 들린다.

 

1977년 여성지에 실린 글 (에필로그)
다음 편에서 계속

비말 飛沫

 

그 날 보호실에서의 하룻밤

그 날 보호실에서의 하룻밤 긴 나무걸상이 둘 마주보며 놓여 있을 뿐 소녀의 키를 넘는 창은 하늘 조차 보기 어려웠다. 쇠창살은 그나마 쇠를 채우고, 그 바깥엔 삼십을 훨씬 넘어 보이는 사내가

4mahpk.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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