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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여자

봉순이 언니와 석류나무

by 비말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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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와 석류나무

제대로 익은 초겨울 석류는 핏물같은 진홍색인데 아직은 촛짜들 늦여름 석류들은 비릿한 새내기들인지라 붉은 색깔만 그럴싸하지 그 아찔한 맛도 느낌도 없습니다.

 


한 주먹 쥐어 앙벌리고 입안에 털어 넣으면 새콤달콤 그렁해진 눈물과 입안에 고인 침이 짜르르 단맛 신맛이 납니다. 대여섯살 때 푸른 세라복에 하얀카라가 달린 서울서 언니가 보내준 원피스에 받아 처음 맛본 그 석류맛과도 닮았습니다.

 


늘 조용하고 말이 없던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던 봉순이 언니는 한번씩 우리집 밑, 그녀의 언니가 시집와서 사는 집 (사돈댁 황부자집) 대청마루 기둥에 조카의 기저귀감 하얀소창으로 꽁꽁 묶인 체 버둥거리며 미친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손을 꼬옥 잡으며 ‘이리 온나’ 하던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닿은 긴 머리가 흘러내려 헝컬어진 체 흐릿한 눈으로 허연 침까지 흘리는데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그 자리에 선 체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곤하다 울엄마한테 끌려나가기도 했습니다.

 


보리 문둥이라던 나병환자들의 쉼터에서 잔치가 벌어진 날 봉순이 언니는 울엄마한테 나를 빌려 (?) 간다 하고는 내 손을 잡고 산을 넘고 개울가도 건너.. 어린 날 기억으로는 참으로 먼 길을 걸으면서 업혀서 졸다가 깨어 걷다가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우물가에서 시끄럽던 아지매들이 ‘아가, 쎄라야 이리와 본나’ 나를 불러서 옆의 키작은 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 줬는데 치마를 벌리라고 했는데 잘못 벌려 쏟아져 내린 그 알맹이들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분홍과 빨강색은 싫어했지만 그 색은 참으로 예뻤습니다.

 


입만 안벌리면 촌.뇬 소리는 안듣던 비말이가 천리교라는 곳에서 나병환자를 위한 잔치가 벌어진 날 우물가 아지매들한테 둘러싸여 이쁨받던 날~ 늘 하던 갱상도 사투리가 서울생활 하룻만에 무식한 소리라 취급받기전까지 다정한 내 고향 말씨~ 벌써 육십년은 됨직한 그 날 일들을 오늘도 또 다시 꺼내 느낌과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봉순이 언니와 석류나무는 늘 뗄래야 뗄 수없는 아련한 아픔이고 추억인가 봅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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