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온 여선생님 1960년대초 울동네 골목안

서울서 온 여선생님 1960년대초 울동네 골목안

서울에서 오신 예쁜 여선생님이 온 동네를 훌딱 뒤집어 놓았다. 울동네 사람들은 선생님이 가까이 올 때부터 지나갈 때까지 숨을 멈춘다. 웃집 작은 어선 선장인 군이 아버지는 여선생님 얼굴 쳐다보고 실실 웃었다꼬 군이옴마한테 할키고 꼬집혀서 얼굴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민망시럽다.

살짝 꾸불거리는 까만 긴머리카락이 햇빛이 닿을 때마다 빛을 반사 해내고 실같이 가는 금목걸이는 십자가를 무겁게 달고는 하얗고 긴 목에서 데롱거린다. 웃집 순난이 언니가 뻘건 대낮에 입고는 온 마당을 헤집고 댕기는 잠옷보다 백배는 더 예쁜 레이스가 달린 브라우스는 딱 한번 본적이 있는 하얀 눈색깔이다.

무릎을 쫌더 올라간 쫌 짧은 듯한 검정치마가 움직일 때마다 속치마가 보일듯 말듯.. 그것도 하양색인 것같다. 브라우스보다 더 많은 레이스가 달리고 걸을 때마다 반짝 반짝 빛을 내는 깜장 빼쭉구두는 순난이 언니껏보다 더 빼쪽하다. 순난이 언니는 걸을 때마다 뒷뚱거리는게 여엉 불안해 보였는데~ 궁디만 너무 흔들어 대고 근데, 오무짜 선생님은 걸음도 참 예쁘게 걷는다.

와아! 억수로 에뿐 오무짜 (인형) 선생이다! 동네 머스마들이 먼지를 내며 우루루 몰려간다. 머스마들은 서울서 온 끄꺼레이 (거지) 왕초 마누라가 동네에 들어서면 쫄랑 쫄랑 개떼같이 따라 댕기면서 '서울내기 다마네기 맞죤 꼬시레기..' 해싸면서 침도 뱉고 돌도 던지고 오줌도 갈기면서 못 살게들 굴면서 같은 서울서 온 여잔데도 암말들을 않한다. 어쩌면 저리도 달라질 수 있을까? 문디같은 자슥들!

연이 즈그오빠 덕식이 놈이 진짜로 웃긴다. 한놈 같이 순하디 순한 양이 되어 배실거리는 꼴이 가관이다. 덕식이 엊그제는 나보고, '지아야! 않있나 나는 니가..'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 한다는 말이 '저 황포돛대 부른 이미자보다 백배는 더 마이 좋타!' 그러고는 도망가면서 또 했던 말이 '우리 연이 미국 오무짜 맹키로 큰 니 코도 좋고 아아들이 빼쭉하다고 숭보는 니 얼굴도 에뿌고오~ 니 주근깨도 참 조타아!'

문디자슥! 그 말 한지가 얼메나 됐따꼬.. 해벌쩍 해 갖고는! 연이랑 나랑은 동갑이고 덕식이는 두 살 위인 국민학교 2학년이다. 눈썹이 시커멓고 쌈도 잘하고 나 좋다고 하는 덕식이가 나도 싫지는 않다. 지 동생 연이한테 보다도 잘 하고, 우리 작은 오빠보다도 나한테 더 잘 해주는데 '나도 좋다!'

'자, 어린이 여러분!' 목소리도 작년 여름성경 학교 때 서울서 왔던 대학생 선생님들보다 더 듣기 좋다.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저쪽으로 서고 아직 학교에 다니지않는 어린이들은 이쪽으로 와 서세요.' 연이와 나는 한 쪽에 나란히 서고 덕식이는 저쪽에 가 선다. 억울해 하는 표정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에뿌다. 냄새도 싸아한 박하사탕 냄새가 난다. 순난이 언니의 싸구려 동동 구루무 냄새는 '왜액' 구역질이 날 것 같은데 오무짜 선생님 냄새는~ 겨울에 감기기운으로 코가 막혀서 잠 못자고 낑낑대면 엄마가 살짝 코밑에 발라주던 안티 푸라민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난이 언니 냄새하고는 질이 다른거 같다. 연이가 쿡쿡 찔러대면서 에뿌다, 그지?' 그래도 나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가 않다. 그렇긴 하지만..

덕식이가 자꾸 흘껏거리는게 눈에 거슬린다. 딴 때는 나를 그렇게 쳐다 봤는데, '문디같은 자슥! 학교에만 가 봐라 나도 니하고는 말도 않할끼다.' 확실히 에뿌기는 예쁘다! 시집가서 서울 사는 울언니가 동네에서 젤로 이뿌고 얼굴도 하얗고 키도 커고 공부도 잘 했고 똑똑하다고 했는데~ 오무짜 선생님이 내 눈에도 훨씬 더 예뻐보인다. 화한 냄새도 좋고.

2011년 미주 중앙 J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