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의 봄은 더딘 듯 바쁘게 왔다가 빈 화분들을 채웁니다. 비말뜨락 풀꽃나무들이 혼자서 둘이서 짝짝꿍하게 냅둔 상태에서 넘편한테 맡겨뒀더니 난리굿을 해댑니다.
100 개도 넘을 빈 화분들을 뭘로 채우고 뭐에다 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으셨는데 그 것도 모자라 그냥 마당구석에 구멍파서 묻어 버리기도 했던 시간들을 다시 소환해 냅니다. 삽은 군대가서 처음으로 만져봤다는 넘편이 저렇게 얌전하게 화분을 만들어놓고 마눌칭찬을 기다립니다.
비말뜨락에서 명함도 못 내밀던 다육이들이 기를 펴면서 용설란은 가시를 내놓고 암탉은 올망졸망한 병아리들을 자꾸 까내면서 우리도 저 사기화분에 넣어달라며 이뿜을 더합니다.
딸넴과 사위한테 사철나무들 화분으로 만들어 뒀으니 가져가라고 했더니 딸뇬 '우린 저런 거 필요없어, 키큰 나무 1,000불이라는데 멋있어!' 어쩌고 합니다. $1,000 이 뉘집 똥강아지 이름인가? 돈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고들 있네~ '이 애들아, 그 만한 화분을 화원에 가서 사려면 몇 백불씩한다.' 그래도 별로 안 이쁘다며 '괜찮아!' 합니다.
지 아버지가 지들 주겠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빠는 골프나 치지 그건 왜 해?' 얄밉게 한마디 더 보태 지 아버지 기를 죽이더니 몇 달 후에는 죄다 싹쓸이 해 갑니다.
석류는 다산의 상징처럼 열매하나 땅에 떨어져 썩어 죽으면 수십, 수백의 싹을 틔웁니다. 물론 그 것들이 다 살아 석류나무가 되는 건 아니지만요. 짝꿍이 공부만 하셨던 시아버님의 장남인 줄 알았는데 역시 그 DNA는 할아버지의 장손이었나 봅니다. 땅을 사랑하셔서 흙에 모든 걸 거시면서 자식들은 공부를 시키셨다던.. 빈 화분에 석류나무를 키우고 진홍색 석류꽃도 피워냅니다.
제라늄은 분홍색이라고 뿌리째 뽑아 버리고 다육이는 지저분하다고 빼서 쓰레기통에 죄다 버렸는데.. 키친 창밖을 내다보니 푸성귀 심을 거라고 골라둔 땅에 다육이 화분들로 가득 채워뒀습니다. 욕먹을 각오하고 했다면서도 은근 보이게 창문앞에 줄 세워뒀네요. 혼자 솟아난 무화과 나무가 키를 키우면서 석삼년 열매를 못 맺고 언제 베어져 나갈지 몰라 노심초사합니다.
300여평 땅에 이런 감자를 심었더라면 잘 키워 냈을까? 그 때는 감자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때니 감자꽃 피는 것만 보고 땅에서 그대로 말라 죽일때 였습니다.
감자 10 파운드 사다가 한솥을 삶아 식히는 중입니다. '뭘 할건데?' 궁금한 짝꿍이 캐물어도 '몰라!' 단답형으로 궁금증을 끊어냅니다. 사실 저도 뭘할 건지는 잘 모르니까 뭐라고 해줄 답이 없습니다.
2020년 4월의 비말뜨락이 키친 창밖에서 열 일들을 합니다. 빈 화분을 채우던 짝꿍은 뜬금없이 집을 팔고 땅을 사서 산위에 집짓고 나무를 심자면서 만평짜리 땅을 보러 다닙니다. 이 때부터 넘편과 마눌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는데.. 코로나 19가 깊어가고 장난같이 내놘 집은 하룻만에 팔리고 돈을 가지고도 둘은 4개월여 집없는 천사가 되어 아차했으면 객사할 뻔 했습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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