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엄마 안녕! 죽어도 무덤속은 싫다!' 죽은 후에 편안하게 누웠다고 '무에 그리 좋을거냐' 시며 내 품으로 품어 키운 내 새끼들 가고 나면, 얼굴도 이름도 모를 조부모 무덤에 무슨 정성이 뻐쳐서 손주들이 계절 바꿔가며 꽃가지 꺽어들고 '찾아와서 풀베고 절하고 하겠느냐' 시던..
세월이 지나 아파트를 짓고 새 건물들이 들어서면 파헤쳐진 무덤속의 뼈가 어느집 강아지들 노리개가 되어 뒹굴지도 모르는데 '그건 싫다' 시며 자식들이 토를 달을라 치면 무서운 말로 입을 막으시던 아버지, 엄마! 두 분 살아 생전 의좋고 깨볶는 원앙짝도 아니셨건만 어찌 그 마지막을 원하는 소원만은 두 분이 똑 같으셨던지..
십 이월 마지막 날,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셨던지 당신 키만한 가족들 겨울옷과 담요를 손으로 빨아 느신 후 물기 머금은 그것들이 고드름을 메달고 마른동태 마냥 빨랫줄에 뻣뻣하게 메달려 있을 즈음 머리가 아프다시며 진통제 두알 드시고 '잠깐 누웠다 일어나마!' 시며 자리에 누워셨다는데 영영 못 일어나시고 뇌출혈이라는 이상한 병명하나만 가르쳐주시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엄마는 떠나 가셨다.
당신이 늘 소원 하셨던 것처럼 아주 조용히 자식들 맘고생 몸고생 시키지 않으시고.. 단 몇 시간만에!
그 날 나는 종로통에서 친구들과 함께 망년회를 보낼 계획에 언니네서 온 하루를 보냈다. 식목일날 가신 아버지와도 한 해의 마지막날 가신 엄마와도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눠지 못했다.
막내딸만은 박봉이라도 공무원한테 시집보내지 사업가한테는 절대 않줄거라셨던 엄마. 내 나이 스물부터 사모으시던 그릇들이 삼십 몇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의 그릇들을 쓰고 있다. 막내딸 시집보내기 전엔 눈도 못 감겠다시더니 무에 그리 바삐 갈 일이 있으셨던지 자정을 알리는 쾌정이 울리자마자 곧 다시 깨나기라도 하실듯이 얼굴에 주름까지 지우면서 환하게 웃으시며 가시던지 겨우 육십년 세월 채우시느라 그 모진 고생 험한 세상 다 겪으셨던지..
'여자는 엉덩이가 무거우면 않되고, 남의 집에 갔을 때 안주인이 부엌엘 가면 함께 가서 얘기도 하고 일도 돕고 해야지 '손님입네' 하고 다른 이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건 빵점짜리고.. 죽으면 썩어질 몸 아끼느라 요리 조리 일 무서워 피해 다니는 여자는 천하에 아무 쓸모없는 망종이다' 시며 말의 높낮이도 없이 늘 조용히 지나는 말처럼 이르시던 울엄마.
'마늘 각시' 엄마는 하얗게 곧게 가른 앞가르마에 동백기름 발라 한 올 흐트러짐없는 쪽진 머리를 양손바닥으로 만지고 또 만지시고 보일듯 말듯 사알짝 내비치던 이마께의 파아란 실핏줄이 엄마의 강인한 성품을 보여주는 듯도 '야무치' 라는 아명처럼 늘 부지런하고 척척 어떤 일이고 잘 해내시던 '콩쥐' 라고 내가 붙인 울엄마 다른 이름은 가끔씩 어린 내가슴을 싸아하게도 만들었다.
당신에겐 너무도 귀해서 당신의 키를 넘겨 커버린 두 딸들 설겆이 조차 시키기 아깝다시며 '이 담에 시집가면' 하기 싫어도 다해야 하니까 엄마하는 것 잘보고 제대로 해라!' 시며 혼자 해내시던.. 남의 집에 가면 몸 아끼지말고 바지런하게 움직여 가정교육 잘못 받았다는 소린 듣지않게 하라며 말수가 짧으셨던 분이 그런 말만은 지치지도 않고 하고 또 하시고.. 참 자주도 하셨다.
엄마 길 떠나시던 날은 '정초에 휴일에 진눈깨비까지' 날리며 모든 게 마비되고 더디기만 하더니 백제화장터 화로에서 한줌재로 되기까지는 '찰라가 그리 짧은 것일까' 싶게 호상이라며 좋은 일 많이 하신 심성고운 분이시라 날씨도 부조를 한다며 덕담들을 했지만아버지를 보내드린 어느 산기슭에 엄마를 보내드리고 머리 파묻고 복받치는 울음한 끗 털어내는 청개구리 자식들은 오늘도 '개굴 개굴' 가슴으로만 물기없는 빈울음만 삼키고 있다.
12 월 31 일 먼길 떠나신 엄마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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