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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바랜 편지를 들고

널 꽃으로 생각하고 있나봐

by 비말 2022. 11. 10.

널 꽃으로 생각하고 있나봐

쿠쿠가 밥통인지
내가 밥통인지 왜 자꾸 꼬들밥이 되는지
엉컹퀴는 아이리스 꽃을 품고
가을을 봄인 양 노래한다

국적도 불분명한 삶들을
살아낸지도 하도 오래라 내가 날 '모르쇠'
하는데 음식인들 별 다를까

 

가지 깻잎 시금치 콩나물 오이 부추
파 무우 당근 두부 미나리 캔정어리 팽이버섯
지지고 볶고 무치고 끓이고

정체 불명의 실력으로 뚝딱
만들어낸 애들이 먹을 만 하다니 다행이고
먹고 탈 없으니 감사함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요즘
부쩍 보고 싶어지는 월수, 엽서 때문일까?
학교 친구도 아니고 직장 동료로
만나진 것도 아니었는데..

70 년도 후반 잡지 문예란에
실린 내 글을 보았다면서 편지를 보내 준
월수와는 서울과 안양을 오가면서

남자 만나야 할 나이들에 꽤는
자주 만나고 붙어 다녔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이뻤고
가름하고 갸날픈 것 같았으나 똑부러지고
부드럽고 착하고 씩씩했던 그녀

요즘 자주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블방에서 만나지는 친구님들이 그 옛날을
상기시켜 주어서 인가보다

 

본적도 만난 적도 없는 블방님들과
글주고 받으며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혹
'이이가 그 누군가가 아닐까?'

 

스물 대여섯살 나이가 많다고
'노처녀' 라 생각했던 그 때의 곱절을 먹고도
더먹은 지금의 우리들이 다시 만나면.
가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그러다 거울속에 비치는
사십년 세월 노략질과 내가 만난다, W라질
댓답글 끊고 거울하고 친해야지.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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