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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바랜 편지를 들고

특별했던 계절은

by 비말 2024. 12. 16.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가장 특별했던 계절은? 오늘 12월 16일 2024년의 티스토리 주제를 눈으로 읽으면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금사시 은사시 추억줄을 타고 오릅니다. 금동아줄인지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르면서 오르고 오르다가 '왜 여기에 있지?' 주제 파악하면서 다시 줄을 타고 내립니다.

언젠가 부터 '어떤 계절이 좋다' 는 것도 없어집니다. 특히 싫은 계절은 겨울, 그 것도 12월 이 즈음 입니다. 헌데 기억에 남는 것들이 이맘때인 걸 보면 싫은 게 아니고 그리운 게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사계절 중-가장 특별했던 계절-12월 겨울
사계절 중 가장 특별했던 계절, 12월 겨울

 

계절이 뭐가 됐든 그저 그 때 그 장소, 그 시간,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느낌이 좋으면 철 모르는 계절도, 때가 되면 알아서 피고지는 풀꽃나무들도, 계절 감각없이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들도 특별하지 않아도 다 특별하게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저는 겨울을 그 중 젤로 시러라하는데 하필이면 생일도 이맘때 입니다. 둘째 조카도 짝꿍도 작은 오빠도.. 우리는 모두 겨울 아이들입니다. 음력과 양력이 뒤섞이긴 했지만요. 울엄마는 기일로 12월 마지막날에 함께 하셨네요.

 

 

한복속에서 아직도 엄마냄새가 난다

한복속에서 아직도 엄마냄새가 난다 붉은 색을 시러라 하다보니 어쩌다 생겨진 분홍색 빨강색 종류의 옷들은 한 두번 입고는 옷장이나 가방속에서 꾸겨진 체 몇 십년을 잊혀지고 다른 이들에게

4mahpk.tistory.com

 

어릴 때 엄마가 목욕물 데워 다라이에 손 담궈시면서 '이만하면 됐다 들어가 봐라!' 하시던 목소리가 갑자기 귓전을 때리는 것 같아 벽에 눈이 갑니다. '아, 엄마 기일도 다가오네?' 올해는 아직 2025년 달력을 준비하지 못 했는데 미국의 한국 아리랑마켓에서 주는 대형달력. 미주의 한국노인들을 위해 만든 큰 글씨 한글로 음력까지 표기된 달력을 하매나 기다리는 짝꿍한테 '나가서 하나 살까?' 했더니 '그걸 왜 돈주고 사?' 합니다.

어릴 때는 한 장짜리 달력가지고도 잘 만하면 교과서 두권은 거뜬히 씌울 수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처마밑에 주렁주렁 걸어둔 곶감처럼 데롱거리며 생각의 널을 뛰면서 금밟고 선을 넘습니다.

비말네 뜨락-석류와-사이프러스와-벽난로
비말네 뜨락 석류와 사이프러스와 벽난로

 

작은 오빠는 새 책을 받아오면 늘 제 교과서를 검사했는데 그 날은 비말이 이마가 뻐얼겋게 피멍드는 날이기도 합니다. 책 장마다 한 과가 끝나면 반 쯤의 그 빈공간 페이지가 제겐 젤로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종이가 흔치않던 시절 누우런 공백의 종이들만 보면 쓰고 그리고 황칠을 해댑니다.

온갖 요시락으로 도시락을 싸대는 그 즐거움 때문에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소리죽여 울던 날이기도 합니다. 책 장의 공간마다 빽빽히 들어찬 낙서 하나에 한 대씩 얻어 맞아야 하는데도 작은 오빠랑 한 약속은 까맣게 잊고 아무것도 없는 백지만 보면 눈이 돌아갑니다. 그 덕분인지 국민학교때는 글씨 이뿌게 쓰는 어린이로 뽑힌 적도 있었는데 이젠 어차피 꼬부랑 글씨 영어를 써서인지 제 한글체도 별로 안이뿌네요.

태양이 비말네-사이프러스나무와-소나무에
태양이 비말네 사이프러스나무와 소나무에

 

'오빠야 니가 아부지도 아인데 와 자꾸 때리쌌노?' 눈물콧물 범벅으로 큰 맘먹고 오기도 한번 부려봅니다. '이 가시내야, 니가 깨끗이 써야 딴 애들한테 물러줄꺼 아이가?' 네 살 터울 작은 오빠는 참 어른스럽기도 합니다. 일 년에 몇 번 꿀밤은 맞지만 뒤에서는 늘 수호천사처럼 저를 지켜줍니다. 뭐든 잘하고 잘 생긴 작은 오빠 덕분에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내 친구들 언니들이 지 동생들한테보다 나한테 더 잘 해줍니다.

'머스마가 간풀기도 하지!' 가끔 동네 오지랖인 군이 즈그옴마가 그리 말하는 걸 듣기도 하지만 울작은 오빠는 공부도 잘하고 쌈도 잘해서 웃동네 중학생 머스마들도 다 이기고 운동도 잘해서 따르는 애들도 많았습니다. 스무살 먹은 고아원 출신 용이 오빠는 어른인데도 울오빠 말에는 껌뻑 죽으면서 쫄병처럼 따라 다니며 뭐든 다 들어줍니다.

통영멸치 넣고-시레기 된장국과-찹쌀밥
통영멸치 넣고 시레기 된장국과 찹쌀밥

 

가난한 집에 생일이 한꺼번에 둘이 든 12월, 울아부지 엄마한테는 큰 짐이셨을 것 같은데 그래도 뭔가 작은 선물 느낌으로 밥이라도 챙겨주셨던 시간들을 짜맞춰 듯 떠올려도 봅니다. 이제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시간들이 좋지만 불현 듯 초겨울 새벽 바람처럼 가슴을 치고 내 빼듯 도망가는 세월의 꽁지를 잡고 '그런 날들 있었지' 합니다.

그 겨울 12월의 어느 날 정지 (부엌) 아궁이속에 장작불 피워 놓으시고 가마솥에서 데운 물을 손으로 온도 조절해 가면서 보드라운 살갗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씻겨주시던 엄마. 작은 이마가 핏물들 듯 뻐얼게지도록 꿀밤 때려가며 헌 책이라도 한번더 싸주면서 '책 아껴!' 하던 작은 오빠도.. 제겐 특별했던 그 겨울 12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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