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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 이벤트

기억에 남는 말은

by 비말 2024. 12. 28.

올해 누군가 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올 한해는 먼저 소풍길 떠나신 형부와 언니 다른 가족, 지인들이 유난히 많은 해 였습니다. 울강쥐 바둑이까지 곁을 떠났네요.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말들이야 많지만 올해라고 딱 찝어하자면 지난 9월에 먼저 가을소풍 떠나신 언니와의 마지막 국제통화일 것 같습니다.

절단 꽃게로-꽃게 무국-밥한상을 차립니다
절단 꽃게로 꽃게 무국 밥한상을 차립니다

 

20대 초, 마루끝에 궁둥이만 걸치고 앉아 '무슨 하루가 이리도 길어!' 혼잣말로 퉁퉁거리는 걸 언니가 수돗가에서 푸성귀 씻으시다 '니도 내 나이돼 봐라..' 그러셨던 시간들을 마음에 담아봅니다. 그 언니께서 갑자기 소풍을 떠나셨던 날을 떠올립니다.

추석며칠 전부터 전화기가 말썽이라 안부전화도 못 드리고 인터넷에서 스맛폰들 고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랑해 우리 막내!' 하시면서 '전화기 새로 사면 바로 전화하거라' 시며 끊었는데 그 다음낭 새벽 부고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서울은 같은 날이었네요. '잠 들었니?' 자다가도 벌떡 몸을 일으키게 하고 전화드려야 겠네!' 합니다.

무우 5개-양파 1개-그리고 파는-꽁지와 함께
무우 5개 양파 1개 그리고 파는 꽁지와 함께

 

지난번 한국마켓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장보러 갔다가 4군데서 골고루 장을 보고.. 마지막 만난 절단 꽃게가 세일을 하기에 하나 집어옵니다. 비쥬얼은 그닥 아닌지라 살짝 마음이 이간질시키는 걸 평정시킨 후 한 팩을 들고와 냉동실에 넣었다가 어제 낮에 꽃게 무국으로 끓였는데 국물이 진국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만한 속 달래주는 국물맛이었습니다. 술국 아니고요.

비쥬얼은 그닥이지만-무우와-국물맛이 예술!
비쥬얼은 그닥이지만 무우와 국물맛이 예술!

 

젊을 때 짝꿍도 저도 각자의 일이 너무 바빠 밥같이 앉아 먹을 시간들이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밥 한솥, 국 한솥 끓여놓으면 아무때고 한 그릇씩 퍼먹었습니다. 10인용 전기 밥솥에 밥 한솥 해놓으면 며칠 후 밥이 누렇게 변하기도 했는데요. 시어머님 돌아가시기 몇년 전 6인용 쿠쿠밥솥을 사주시면서 '우리 아들 맛난 밥 매일 해줘라, 너도 때 잘 맞춰서 같이!' 웃으시며 농담처럼,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은 지금도 잘 지키지고 있습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짝꿍이-신구씨가 되어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짝꿍이 신구씨가 되어

 

이뿌장한 작은 무우 5개와 양파 1개랑, 파는 꽁지까지 깨끗이 씻어 준비를 합니다. 무는 모양없이 큰 깍뚝썰기로 도툼하게, 양파는 찹찹찹 길쭉하게, 파는 크게 잎과 줄기로 나눠 손으로 잘라 꽁지까지 함께 넣습니다.

서울가면 언니, 형부, 큰오라버님께 밥한상 차려 드리자고 한식과 양식을 열심히 블방동 비말이 맛집에서 짝꿍과 둘이 연습을 했던 코로나 19 이전의 삶을 떠올려봅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는 말처럼 세 분다 막내가 차려드리는 밥상도 못 받으시고 먼저 소풍들 떠나셨습니다. 어릴 때 먹던 고향느낌, 통영 갱물맛은 아니었지만 션하고 갯내음이 났는데 말입니다.

기일-꽃게 무국을-솥째로-올리진 않겠지만
기일 꽃게 무국을 솥째로 올리진 않겠지만

 

'사랑해 우리 막내!' 4남매의 맏이 언니와 장남으로의 무게로 평생 힘드셨을 큰오라버니, 세상에 하나뿐인 막내 처제를 딸처럼 이뻐해 주셨던 형부.. 10월 미국 대학이 한가해 질 즈음이면 서울엘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어느 해 10월, 교통사고로 20여 년을 못 찾아 뵈었습니다. 재활 운동하느라 '지쳐라' 할 때 젤로 힘되어 주셨던 세 분의 기억으로 막내는 오늘 또 다른 블방일기를 추억으로 남깁니다.

레시피 없이도 입맛 맞춰드릴 만큼 손맛도 내고 속 간지럽지만 '사랑합니다' 그런 말도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며칠 후면 또 울엄마 기일이네요. 12월 31일 회갑상도 못 받으시고 갑자기 소풍 떠나신 엄마가 이젠 막내딸보다 더 젊으십니다.

하얀 배롱나무의-꽃말처럼-그리운 마음으로
하얀 배롱나무의 꽃말처럼 그리운 마음으로

 

스무살 초 소설가 박완서작가님께서 '글을 잘 써는 효녀딸 두신 어머니는 행복하시겠다' 는 글 선후평을 해 주셨을 때 '잘 했네!' 하시면서 먼산보고 눈물 찍어내시던 엄마의 모습까지 크리스마스 종합선물로 함께 떠올립니다.

충직과 부귀의 상징, 배롱나무, 강아아씨꽃 그 꽃말들을 마음에 앉혀도 봅니다.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 행복, 수다스러움.. 블글친구님들 좋은 하루와 만나지시는 시간여행과 함께 서로에게 상처되지않는 말과 글들로 즐기셨으면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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