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접었던 손가락을 다시 펴면서 접혀진 그 자리에서 기지개로 키를 키우고 전기난로를 켜고 패딩을 하나더 껴입습니다. 츄리닝에 반팔티 하나만 걸친 짝꿍이 '그렇게나 추워?' 방금 따뜻하고 달달한 애플파이와 펌킨파이에 뜨거운 커피로 속을 뎁혔는데.. 뭔 일인가 합니다.
뼈속에 찬바람 스며들 만큼 추운 날씨도 아닌데.. 입어도 으스스 한기가 들고 먹어도 속은 여전히 허하고 채워도 뚜껑열린 뇌가 다 날려 버리는지~ 구멍난 독에 밤새 물 채워도 바닥을 드러내는 콩쥐의 숙제, 팥쥐엄마, 계모의 농간같은 시간들입니다. 잉간이 얄팍해 어찌 지난 날들을 그리도 쉬이 까먹으며 사는지 반성합니다.
비말이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고 해도 블방 어느 누구 본 사람도 없고 보여준 적도 없으니 그냥 나이롱 환자처럼 할일 다하고 놀거 다 놀면서 블방동 우물가를 배회하며 머리에 노랑핀하나 꽂고 퐁당거리며 그림자로 스며듭니다. 1900년 대를 끝으로 서울 다녀오고 아직 2000년대가 24년의 끄트머리를 달리는 지금도 새로 생겼다던 대한민국 인천 공항을 아직도 못 밟아봤습니다.
아작이 난 등과 허리들이 워커로 가슴보호대로 버티며 살아낸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 잊고 삽니다. 워커도 휠체어도 부딪히고 찍히고 하니 집을 들었다놨다 합니다. 키친의 아이랜드도 다 떼버리고 작은 테이블 하나로~ 힘만 쎄고 집 고치는 일에는 무식자였던 짝꿍의 도움으로 돈 별로 안들이고 진통제와 파스 투혼으로 뜯고 부수고 고치면서요.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에서 로라의 남편 알만조가 집을 짓다가 사고로 다쳐 걷지 못하게 됐을 때 이야기.. 휠체어로 영원히 살아야 할 것 같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던 장면과 그 후 재활로 다시 행복해지던 순간들입니다. 비말이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슴이 뻐끈해 질 만큼 환희에 차 방방뛰던 장면들을 몇 개 모아봅니다.
지금은 접어진 체 벽장에 누워있는 워커와 가슴보호대를 꺼내놓고 사진을 찍으면서 새삼 '고마왔다, 수고들 했어!' 지들이야 알아 듣든가 말던가 한 마디합니다. 혼자 눕지도 앉지도 못하던 그 시간들이 머리속을 휘리릭 날아다니며 '나 자바바라~' 합니다. 버리고 또 버리고 지우고 또 지워도 뇌리에 박힌 화인 (火印) 처럼~ 도네이션하려고 내다둔 아이들이 이사오면서 다시 따라 왔네요.
접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게 누군가들한테는 차려진 밥상에서 수저만 들고 먹으면 되는 일 일테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는 것보다 결코 쉽지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남의 말하기 쉽다고 '뭘 그렇게 까지나..' 씹던 껌 뱉아내 듯 '퉤에' 말풍선 끈을 끊어 버리기도 합니다.
내 나라 한국어로 블로그를 시작하던 20여년 전 그 날에도 한국의 어느 블님한테 글로 '아파라' 싶게 까이고 멍 때리면서 '아, 옛날 우리가 손글씨로 놀던 그 때의 한국이 아니구나!' 비온 뒤 굳어지는 땅처럼 블방동 마실길이 조금더 편해집니다.
색바랜 편지를 들고 선 여전사 비말이의 황금촉을 뽀족하게 만들고 가슴에 덧댄 황금방패는 눈부시게 닦으며~ 열손이 자매들이 오타 육타 칠타를 지들 맘대로 함부로 나부닥대지 못하게 한번씩 쳐 주면서.. 황금글 줄잡은 손아귀에 힘을 꽉 줍니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시대는 이미 아니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 자신이 알고 있는 나만의 시간속에서 티스토리 오블완도 막바지, 11월의 달력도 마지막 주일 그 하루에 두 손을 모웁니다.
비말 飛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