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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바랜 편지를 들고

책한권 밥한그릇

by 비말 2025. 3. 5.

봄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누런 시험지처럼 변한 책 한권을 집어들고 손가락에 침 칠해 넘기기도 좀 거시기한 책장을 넘깁니다. 박완서님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192쪽, 193쪽, 194쪽으로 된 짧은 수필詩 '바람 묻은 손수건' 을 돋보기를 써고 읽어냅니다.

컴퓨터화 된 세상에서 작은 개미보다 작고 깨알보다 더 작은 글들 읽어내는 게 모래사장에서 몽돌하나 찾기보다 힘듭니다. 아직은 눈에도 마음에도 익숙치않은 돋보기도 그렇고.. 말이 3 페이지지 두 쪽도 채 다 않되는데 흰찹쌀밥에서 콩알 하나씩 찾아내는 느낌으로 읽어가며 몇 줄 적어냅니다.

책 한권-박완서님의-'바람 묻은 손수건
책 한권, 박완서님의 '바람 묻은 손수건

 

키친 팬츄리를 정리하다가 콩 한팩 찾아내 밤새 불려 놓았다가 푸욱 삶아 몇알 씹어 먹으니 고소합니다. 너무 말라 비틀어진 것 같아 그냥 버릴까 하다가 삶았더니 통통해집니다. 찹쌀밥에 콩물째 들이붓고 밥을 했더니 생각보다 맛나고 짝꿍도 좋다고 하네요. 봄바람에 날려온 바람 묻은 손수건에 오랜 세월 꼬옥 싸메둔 기억들과 함께 책 한권 밥 한 그릇으로 멍 때리는 시간입니다.

밥 한그릇-묵은 콩 한팩 찾아내-찹쌀콩밥
밥 한그릇, 묵은 콩 한팩 찾아내 찹쌀콩밥

 

박완서님의 '바람 묻은 손수건' 이란 제목으로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얼마 전 '지구촌의 한국인' 이란 프로그램에서 재미 (在美) 판화가 황 규백의 사는 모습,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저것 두서없이 많은 것을 생각했다. 우선 시집간 딸의 방에 붙어있던 그림엽서로 된 그의 판화 생각이 났다..

아무것도 없는 네모난 방 귀퉁이에 우산을 하나 세워놓은 구도였다.. 흔해빠지고 아무것도 아닌 게 꼭 뭐처럼 보이는 것이 이상했다. 볼수록 뭐처럼 보였다.. 그 때 나는 황 규백 (黃圭伯) 이란 판화가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바람 묻은 손수건 중-황규백 판화가, 화가
바람 묻은 손수건 중, 황규백 판화가, 화가

 

*황규백 (黃圭伯) 은 유명한 한국의 판화가이자 화가.. 1932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여러 대륙에 걸친 활동을 통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1970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메조틴트 판화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그의 작품은 일상적인 사물과 장면을 초현실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대표작으로는 'Die in the Tent (1975), Butterfly (1981), Street at Dark (1993) 등이 있다는데 사실 별로 관심이 없던 저는 잘 몰랐습니다. 2000년에 한국으로 돌아가셔서 신체적인 제한으로 인해 판화보다는 주로 회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AI봇이 알려주네요)

찹쌀콩밥과 서리태-작두콩-병아리콩-돈부콩
찹쌀콩밥과 서리태, 작두콩, 병아리콩, 돈부콩

 

*콩의 종류는 현재 50여 가지로, 우리네 식탁에 주로 오르는 콩은 메주콩, 검정콩, 밤콩, 청태, 완두콩, 강낭콩, 얼룩이콩, 쥐눈이콩, 서리태, 팥, 작두콩, 병아리콩.. 콩은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담그는 데 쓰이는 장류콩, 콩나물콩, 풋콩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 엄마는 '돈부콩' 이라는 이름을 많이 부르셨는데 경상도 사투리인 줄 알았는데 '동부콩' 이라며 인터넷에도 설명이 돼 있네요.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B군, 철, 마그네슘, 칼륨이 풍부하고 혈당조절과 심장 건강을 촉진, 체중관리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올 봄밥상으로-2025년 봄을-재연해 봅니다
올 봄밥상으로 2025년 봄을 재연해 봅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책,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에서 만나진 황규백 화백님과 그 분의 작품세계.. '바람 묻은 손수건' 에서 봄바람에 묻어온 또 다른 세상을 만납니다. 책 한권 펼쳐들고 밥 한그릇 퍼놓고 천가지 만가지 생각들이 갈리기도 합니다. 잊었던 전설같은 60여년 세월을 건너뛰고 시간을 넘나들기도 합니다.

어제 먹은 반찬도 있고 작년에 먹은 것도.. 언젠가 포스팅으로도 올려졌던 사진들을 잘라 하나로 묶으니 오늘 점심에 먹은 밥상이 된 듯 먹음직해 보입니다. 두부를 으깨고, 야채들로 부침개도 만들고, 닭볶음, 호박구이, 오이쨘지, 무우 채김치와 배추김치로 미래의 봄밥상을 다시 만들어 봅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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