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색바랜 편지를 들고

보라 올리브열매

by 비말 2025. 2. 20.

캘리포니아의 겨울아침 햇살이 퍼플 태양빛으로 눈이 부십니다. 새벽참 먹어 치우고 아침 산책길에 나섭니다. 햇살로 빛바랜 연두와 초록의 울퉁불퉁 안이뿌게 깍인 남의 집앞 잔디옆을 걷다가 보라색 올리브 열매를 밟아 운동화에 보라색물이 튀깁니다.

하늘과 맞닿은 고목나무에서 퍼플 태양이 쏟아지고 후두둑 보랏빛 올리브 열매가 떨어져 바닥을 치면서 잔디위에 내려앉습니다. 껍질이 벗겨지고 마른 가지들이 죽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올려다보니 검은 올리브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보라색-올리브 열매 (Olive Fruits) 가-잔디밭에
보라색 올리브 열매 (Olive Fruits) 가 잔디밭에

 

지금 이 순간, 평화와 지혜라는 그 꽃말이 무색하리만치 짜증나는 올리브나무.. 하필이면 하얀모자를 써고 흰색 운동화를 신은 아침이네요. 올림픽에 나서서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도 아니면서.. '들어가지마!' 짝꿍이 말리기도 전에 올리브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 올리브 열매를 줏어 모읍니다.

고목같은 Olive Tree (올리브 나무) 에-올리브가
고목같은 Olive Tree (올리브 나무) 에 올리브가

 

봄볕같은 아침햇살 쬐며 걷자고 나와서는 또 딴청인 마눌을 더는 어찌할 수 없다는 듯 잠시 서성이던 넘편은 혼자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든가 말던가~ 민들레꽃 하나는 외로와 저 만치 핀 민들레 꽃모가지 하나 더 꺽어 옆에 꽂아줍니다.

초록 잔디-보라색 올리브 열매-노랑 민들레꽃
초록 잔디, 보라색 올리브 열매, 노랑 민들레꽃

 

폰카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어려는 순간 갑자기 몰아친 바람에 몸이 휘청거립니다. 모자속 머리카락이 쏟아져 나오고 까딱했으면 엉덩이까지 꽃자주색으로 퍼플 멍물들뻔 했네요.

주저 앉으면서도-폰카는 꽉 거머쥐고-한 컷 찰칵
주저 앉으면서도 폰카는 꽉 거머쥐고 한 컷 찰칵

 

아악~ 외마디 소리에 앞서 혼자가던 짝꿍이 더 놀래 '괜찮아?' 소릴 질러댑니다. 늦잠자던 누군가들은 꿈속에서 기절초풍했을 것도 같습니다. '괜찮아요!'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몸을 수습하고 손에 꽉쥔 폰카를 힘껏 누립니다.

그린-퍼플 올리브 열매와-잔디밭-노랑 민들레꽃
그린 퍼플 올리브 열매와 잔디밭 노랑 민들레꽃

 

'이 넘의 운동신경하고는~' 혼자 만족해하는 마눌이 어이가 없는지 '조심해!' 한 마디 내던지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가는 넘편.. 올리브 나무를 벗어난 퍼플 태양이 하나가 되고 둘이 되고 셋이 되어 빛을 쏟아냅니다.

올리브나무 사이로-쏟아져 내리는-퍼플 무지개빛
올리브나무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퍼플 무지개빛

 

'이것 좀 줏어가서 올리브 짠지 만들어볼까?' 이미 멀리간 짝꿍을 향해 혼잣말보다는 크게 허공에 날립니다. '뭐라고?' 알아 들었으면 'Mi쳤어?' 한 마디했을 텐데 다행히 못 알아 들었나봅니다. '아깝따, 작은 병으로 몇 개는 나오겠는데..' 담번엔 올리브 열매를 집에서 가공해 먹는 것도 공부 좀 해얄까 봅니다.

Olive Tree-Olive Fruits-Green grass-Sunshine
Olive Tree, Olive Fruits, Green grass, Sunshine

 

죽은 듯 살아 숨쉬는 고목나무, 겨울 올리브나무 아래서 가던 길 멈춰고 앉아 세상에서 젤로 할 일없고 한가한 여자되어 멍 때린 시간이었네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를 달려 지혜롭게 살아내 평화의 순간을 맞이한 올리브 나무입니다. 보라색 올리브열매가 마켓의 병안에서는 꽤 비싼데.. 못내 아쉬워하면서 짝꿍을 따라 잡으며 아침 산책을 계속합니다.

비말 飛沫

'색바랜 편지를 들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리브에 꽂히다  (68) 2025.02.22
올리브나무 꽃말  (62) 2025.02.18
검은 콩떡 호박죽  (70) 202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