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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바랜 편지를 들고

산길들길 구름길

by 비말 2025. 1. 30.

구정 연휴도 없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음력 12월 말일은 아직 산불 휴유증으로 산에 오르기엔 몸맘이 움츠려들고 지난번 산에서 난 사고로 자동차에 백만원쯤 들이고 나니 망설이게는 하지만 반대편 산으로 길을 나섭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뭉실뭉실 가볍게 떠다니면서 모였다 흝어졌다 온갖 모양으로 지들만의 리그로 자동차 앞길을 막았다 열었다 장난질을 쳐댑니다.

산으로 오르는-프리웨이가 잘 닦여져 씽씽
산으로 오르는 프리웨이가 잘 닦여져 씽씽

 

몇번 다녀왔다고 오가다보니 길도 익숙해지고 노하우도 생겨 지난 여름에 몇번 다녀온 371번 프리웨이를 맘껏 달리면서 그예 철이 세 번이나 바꿔고 해가 바꿔도 눈에 띄게 많이 달라진 것이 없는 풀꽃나무들을 만납니다. 두어달 후면 이곳들은 전 세계에서 찾아드는 관광객들로 붐빌지도 모르는데요. Anza Valley, California 프리웨이 371번 도로를 가로 지러다 보면 봄 풍경이 그림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Anza-Borrego Desert State Park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미니 바위들이-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미니 바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그리 멀지도 오래되지도 않은 지난 날들, 저 바위 틈에 인디안들이 숨어있고 말달리며 활과 총칼로 전쟁을 치뤄기도 했을 아픈 역사들을 이야기하면서 소설, 영화, 설화들을 아는 만큼 서로 떠들어댑니다.

잘 닦여진 도로를 벗어나고 산으로 오르면서 길이 엉망입니다. 며칠 전 비로 웅덩이가 파여 못 갈 것 같은데 고집쟁이 넘편은 갈 수 있다며 달립니다. 오르고 내리는 반모래땅과 자갈들이 조수석에 앉은 마눌 등허리를 강타하며 '나 죽네!' 할 때마다 '어떡해?' 하면서도요. '어떡하긴.. 그냥 가요!' 겁도 많은 사람이 괜찮다는 마눌말에 겁도 없이 달립니다.

오르고 내리는-산길들길에-등허리뼈가 죽겠다고
오르고 내리는 산길들길에 등허리뼈가 죽겠다고

 

바깥 온도는 화씨 50 (섭씨 10) 도 안팎인데 하늘의 해와 구름느낌은 따뜻해 보입니다. 자동차에서 내려 털패딩에 마스크까지 무장을 하고 잠깐 숨고르기를 하고난 후 도시락으로 가져온 비말이식 퓨전식 밴또를 깝니다. 따뜻한 커피로 속도 뎁히고 달달한 바나나로 입가심도 하면서도 머리속은 '파스도 가져올 껄' 아쉬워도 하면서요.

산꼭데기에서 만난-하늘-태양-구름들은-떰업
산꼭데기에서 만난 하늘, 태양, 구름들은 떰업

 

오를 때 보다 더 험악한 내리막길에서는 '괜찮다' 는 넘편한테 살짝 눈한번 흘기면서 '밑에 까지는 걸어가겠다' 말 합니다. 크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 마음을 모른다고.. 마눌 등허리가 얼마큼 아픈지 몇 십년이 지나도 아직은 잘 모르나 봅니다. 20여년 넘게 파스와 진통제만으로 골프도 등산도 함께 하니.. 등산을 자동차로 하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내려오는 길은-자동차에서 내려-혼자 걷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자동차에서 내려 혼자 걷습니다

 

조심에 조심을 다해 가겠다는 말도 저버리면서 날 듯이 자동차에서 내려 내리막길을 걷는 마눌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혼자 자동차로 먼저 내려가는 짝꿍의 얼굴은 비장 하기까지 합니다. 금방 차 세워놓고 바로 올라 오겠다면서.. 처음있는 일도 아닌데 매번 그러는 게 참으로 신기합니다. 한치 앞을 못 내다보고 큰 그림만 그려대시는 지! 멀미까지 슬쩍.. 민폐될 것 같아 저도 고집을 피웁니다. 자동차 밑에 세워두고 걸어서 오르자고 할 때 말 들었으면 마눌좋고 넘편좋아 완전체 였을 텐데.

산길 들길 구름길이 그 옛날 인디안들과 백인들의 아픈 역사들은 말끔히 잊은 체 한가롭게 길 재촉들을 해댑니다. 지난해 여름 퍼플 태양에 타 죽은 풀꽃나무들이 엊그제 내린 비로 조금쯤은 생기를 얻고 죽은 듯 드러누운 이름모를 지푸라기들이 꽃 피울 준비도 하는 듯 합니다. 살아있는 날, 오늘도 전설이 시작되는 맘맞는 날 되셨으면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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