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짓는 여자20

봉순이 언니와 석류나무 봉순이 언니와 석류나무 제대로 익은 초겨울 석류는 핏물같은 진홍색인데 아직은 촛짜들 늦여름 석류들은 비릿한 새내기들인지라 붉은 색깔만 그럴싸하지 그 아찔한 맛도 느낌도 없습니다. 한 주먹 쥐어 앙벌리고 입안에 털어 넣으면 새콤달콤 그렁해진 눈물과 입안에 고인 침이 짜르르 단맛 신맛이 납니다. 대여섯살 때 푸른 세라복에 하얀카라가 달린 서울서 언니가 보내준 원피스에 받아 처음 맛본 그 석류맛과도 닮았습니다. 늘 조용하고 말이 없던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던 봉순이 언니는 한번씩 우리집 밑, 그녀의 언니가 시집와서 사는 집 (사돈댁 황부자집) 대청마루 기둥에 조카의 기저귀감 하얀소창으로 꽁꽁 묶인 체 버둥거리며 미친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손을 꼬옥 잡으며 ‘이리 온나’ 하던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닿은 .. 2022. 11. 1.
그 날 보호실에서의 하룻밤 그 날 보호실에서의 하룻밤 긴 나무걸상이 둘 마주보며 놓여 있을 뿐 소녀의 키를 넘는 창은 하늘 조차 보기 어려웠다. 쇠창살은 그나마 쇠를 채우고, 그 바깥엔 삼십을 훨씬 넘어 보이는 사내가 표정없는 얼굴로 신문 활자를 더듬는다. 그러다 가끔 고소한 듯 혹은 동정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 듯 신문으로 부터 눈을 떼고 창살 넘어로 소녀를 넘겨다 본다. 어린 아가씨가 이런데는 뭣하러 들어 왔느냐고 묻고 싶기라도 한 듯... 소녀는 갑자기 한기를 느낀다. 뚫어진 창 틈으로 10 月의 새벽 찬바람이 가슴을 파고 든다. '지금 쯤 하늘의 달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겠지!' 얼음장 같이 차고 유리알보다 더 맑게 온세상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아, 추워! 엄마' 낮부터 소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낮엔 조그만 머스마.. 2022. 10. 31.
코스모스 철길 시골 기차역 코스모스 철길 시골 기차역 그 날도 오늘처럼 햇살이 곱던 1976년 시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모여든 친구들의 성화에 가족들까지 '다녀오지 그러냐?' 등을 떠미니 못 이기는 체 함께 떠난 가을 여행, 산도 들도 나무도 물도 함께 어우러진 그곳엔 기찻길옆 오두막집도 있었고 끝없이 뻗어나간 철로도 자갈깔린 철길 양옆으로 코스모스가 지들 맘데로 색깔대로 들쑥날쑥 흩뿌려진 듯 바람따라 하느작거리고 있었다. 갈 때는 왁작지껄 함께 간 친구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낚시를 하고 더러는 옷을 입은 체로 물에 뛰어들어 뗏깔 고운 돌멩이와 고동도 줍고 혹은 돌을 주어다 아궁이를 만들어 때 이른 점심준비도 하고 끼들거리며 뭐가 그리도 즐거웠던지~ 요즘 같았으면 스맛폰 들고 카메라 들고 사진찍느라 난리 부르스들을.. 2022. 10. 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