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12곡 미숫가루
비요일 창밖 풍경은 달라져도 떨어져 부딪히는 비소리는 같아 차 한잔의 여유로 잠시 시간을 되돌리며 지난 블로그 포스팅속으로 숨어듭니다. 누군가는 뒤도 돌아보고 싶지않고 다른 누군가들은 '아 옌날이여'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한 시간들이 같은 듯 다르게 시간을 더해 갑니다.
일년 전보다 딱히 나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아니지만 생각은 조금더 달라져 있는 것 같은데 젊어진 건지 늙어진 건지 그건 정확하진 않고 먹는 건 작년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에 둘째 시누이가 가져온 커피땅콩을 깨물면서 따뜻한 물에 녹아든 12곡 미숫가루를 훌짝거립니다.
좀더 젊었던 예전엔 '와드득' 소릴내면서 깨물었던 커피땅콩이 이젠 조심스럽게 살살 입안에서 녹이면서 조심스럽게 깨물다가 넘깁니다. 12곡 미숫가루는 그 맛을 전혀 느낄 수도 없이 너무 잡곡 (?) 입니다. 그냥 2~3 가지로만 만들었던 예전의 미숫가루가 늘근소녀한테는 제격인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고소하고 따뜻해 추억을 소환시키기엔 나쁘진 않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2017년 3월의 비말네 뜨락은 지난 가을에 남겨졌던 이야기들과 함께 비로 씻겨지면서 봄을 노래합니다. 늦게까지 남았던 엄마석류 나무의 마지막 두 석류들이 비말이가 묶어준 줄에 의지해 안간힘을 써대며 흔들립니다. 남겨진 이야기들과 새로 탄생할 이야기들이 한데 어루러진 체 커피땅콩 12곡 미숫가루 맛 같기도 합니다.
석류나무의 새순들과 다육이, 암탉과 병아리들이 지난 가을의 흔적들과 함께 새 봄을 노래합니다. 컴화면에서 들여다 보는 사진속은 커텐 안에서 내다보던 그 창밖과 잠시 같은 느낌이 되어 비소리로 들려옵니다. 진홍색 석류꽃도 분홍색 쟈스민도 노랑색 암탉과 병아리 꽃들속에서 살짝 얼굴을 보이면서 '지금부터 내 차례야' 다가올 4월을 기대하게 합니다.
석류 새순이 하늘만큼 땅만큼 시야를 가리고 연노랑색 잎으로 채워지던 날, 비말이는 석류 2개의 끈을 풀어줍니다. 바둑이 울집 강뒤가 '할머니 왜 저건 안 따줘?' 묻기라도 하는 듯 데롱거리는 석류들을 바라봅니다. 아직은 건강해서 자기 다리로 네발로 걸어서 뜨락을 맘껏 뛰어 다닐 때 였네요.
입안에서 녹아든 커피땅콩이 12곡 미숫가루와 함께 또 다른 맛을 요구할 즈음 비가 잠시 멈췄다는 짝꿍의 소리가 뒷퉁수를 칩니다. 오늘은 종일 새 식구가 스쳐 지나며 '뭐 먹어?' 로 해도 없는 하루를 채워나갈 것 같습니다. 반공일 하루가 조금더 길어질 것 같으네요. 고국의 블글친구님들 온공일 기분좋은 시간들로 즐기셨으면 합니다.
비말 飛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