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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소녀 일탈기

오렌지밭을 스치며

by 비말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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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크고 넓은 땅에 아직은 서부 영화속 죤웨인의 활극이 벌어지던 흔적도 남아있고 금광을 캐기 위해 찾아든 사람들의 느낌도 오롯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그 중 도산 안창호님의 오렌지를 따며 한국인을 바로 세우고 가르치며 독립운동을 하던 오렌지밭도 남아 있습니다.

계절이 엊갈려 스쳐 지날 때면 잊었던 옛 전설들을 떠올린다는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사슴이 물 속에 비친 제 그림자에도 마음이 찡해져 먼데 산을 본다던 노천명님의 詩에서 처럼 비말이도 저 오렌지밭을 자동차로 지날 때면 역사책 국사책 '대한미국 만세' 라 오짜로 잘못 필기한 역대 대통령까지 떠올리면서 사진 몇 장도 디카로 찍어대기도 했네요.

미국 캘리포니아-리버사이드-오렌지 농장
엄청 크고 넓은 오렌지 농장인데 자동차안에서..

리버사이드 오렌지밭

어제는 둘째 시누이의 번개팅에 종일 남의 동네에 가서 놀다 왔는데 차창으로 보이는 수 많은 봄풍경들은 다 놓치고 (자느라~) 잠결에 찍힌 오렌지밭을 올려봅니다. 언제 한번 자동차에서 내려 제대로 찍어 보겠다는 결심은 십 수년이 지나도 늘 마음만으로~ 30여년이 지나 오렌지밭은 그대로인데 오렌지가 알이 점점 작아져 모양들은 볼품이 없어 보입니다. 다 아는 사실이시지만 도산 안창호님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시에 있는 오렌지 농장에서 일을 하시면서 그 돈들을 모아 고국의 독립 운동자금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물론 반대론적으로 * 안창호의 실력 양성론은 적극적 독립 투쟁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고.. 자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쓰여도 있었으나.. 안창호 평전을 보면, 장남 필립에게 한자와 한글을 가르치고 익히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를 근대 친미적 부르주아·지식인의 수장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도.. 또한 '민족개량주의자, 친미주의자'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고 합니다.' 그건 믿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에 맡기고~

오렌지 농장-오렌지
40년 가까이 오가다 스치던 오렌지 농장

독립운동가 안창호

* 도산 안창호님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본관은 순흥, 호는 도산 (島山), 종교는 개신교이며 구한 말 만민공동회에서 강연을 하시면서 '배워서 익히는 것의 중요성' 을 설파했다 합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영향력이 강대해지자 미국으로 망명,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19년 상하이에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했으며 또한 실력양성론과 함께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발판이라 생각해 1899년 (광무 2년) 점진학교, 1908년 (융희 2년) 대성학교, 1926년 중국 난징에 동명학원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며 미국의 한인 교포사회의 지도자였던 그는 박용만, 이승만, 서재필 등과 경쟁, 갈등관계에 있기도 했다는데..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투척 사건 이후 일본 제국 영사관 경찰의 불심검문에 체포되어 송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형문을 받았고, 고문 후유증으로 경성제국대학 병원에 입원했으나 소화불량과 간경화, 폐질환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합병증으로 출옥 직후 사망했다고 합니다 (*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살아있는 역사는 늘 변화무쌍해서 어느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짜인지 분별이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오렌지농장 곁을 자동차로 달리다가 선잠에서 깨어 사진 두어캇 찍어 올리면서 수백 만가지의 생각들에 펼치며 살짝 정신줄 놓으면서 오늘의 할 일 블로그 포스팅 글 하나 사진 두장에 한 시간 동안 이 야단을 쳐 댑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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