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자카란다 나무야
서쪽 자카란다 나무가 꽃피워 지고나니 열매 맺어 지나는 바람에 씨앗을 내려 놓는데 지난 여름내내 매미소리 한번 못 울게 하고 가지만 뻗어 숲만 무성했습니다. 한솥밥을 먹은지도 17 여년째인 나무, 나무야 자카란다 나무야
더 뒀다가는 방안 살림살이들 내놔서 쓰레기 하치장 만들까 정리에 들어갑니다. 남쪽을 바라보며 지나던 햇살만 받아먹던 석류 하나가 눈치를 챘나봅니다. 우와 햇살이다, 동쪽에서 바로 직통으로 쏘아주는 황금빛 햇살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20 여년 전에 살던 집을 렌트주고 멕시코 고향으로 떠났던 남미계 친구가 20 여년이 넘어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다가 얼마전에는 ‘너희 나라 한국 서울까지 3 번째 다녀 왔다’ 면서 미국 자기집으로 다시 왔다며 초대를 해줘서 참으로 오랜만에 십 수년만의 나들이를 저도 하루쯤의 짬을 내어 가을과 함께 하고 왔더니 비말네 뜨락에서 가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늘 옆에서 지켜주고 함께 해주던 풀꽃나무도 새들도 '그냥 있나보다' 생각없이 지나치고 들여다 보고 물도 주지만 존재 그 자체만 '고마와라' 기다려주는 그 마음을 '나몰라라' 하면서 스쳐 지나고 밟고 서고 애틋하고 안타깝고 사랑스럽고 진실로 고마운 마음없이 영혼없는 빈 마음이었나 봅니다. 산도 넘고 들도 지나 호수도 만나고 돌아온 마음이 애틋함으로 꽉 차오릅니다.
시간이 없는 것도 마음이 없는 것도 아파서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없는 것도 아닌데 마음은 조급증을 내고 애먼 탓들만 해대면서 매일이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집니다. 시간이 없어~ 마음이 꿀꿀해~ 몸이 아파~ 모실 부모님이, 젖먹여 업어 키울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끝이 시작이다 그런 마음으로 또 다른 마음 하나 걸쳐놓고 시작을 해봅니다.
40 년도 안됐을 나무가 몇 백년은 된 것처럼 우람하고 뿌리도 가지도 엄청 납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사닥다리 의지해 타고 올라가 혼자서 다 했는데 올해는 짝꿍이 하는데 맘이 안놓여서 제 잔소리만 허공에 맴을 돕니다.
제 키의 4 배를 넘고 팔뚝보다 더 굵은 나무들을 질질 끌어다 놓는 제게 큰 소리로 그냥 놔두라는 말에 냅다 소릴 질러댑니다, ‘발밑이나 조심해요, 웬 관섭은!’ 이쪽 저쪽 분산해서 몇 주일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고 뜨락 울타리로 엮어질 아이들 바베큐 땔감으로도 벽난로 땔감으로도 자작나무 소리를 내며 잘 탔는데~ 어릴 때 달비장수 아줌마한테 끌려갈 뻔했던 내 머리숫 만큼이나 빽빽하게 들어찼던 가지들이 하나씩 빠져 나가자 햇살이 먼저 그 자리를 치고 들어섭니다.
안방 남쪽을 바라보는 창안에서도 석류나무와 자카란다가 한 눈에 보여 숨이 쉬집니다. ‘진즉에 좀 그래주지’ 이미 입들이 다 벌어진 석류들의 눈총을 느끼면서 힘들게 지지고 볶고할 것도 없이 오늘 아침은 초간단 식단으로 이름뿐인 샌드위치입니다. 진시황제가 찾아 헤메게 한 불로초보다 휴 헤프너가 안고 보듬던 그녀들보다 이 잠깐의 행복이 천국이고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않은 순간입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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