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버섯밥 오이 홍합미역국
신정 전날은 부모님들의 기일이 겹쳐있고 구정 다음날은 생일이 앞뒤로 서서 앉아서 기다립니다. 어릴 때 울엄마나 언니는 '내 복에 난리' 라는 말을 많이들 하셨는데 저도 일 복은 타고난 것 같습니다. 딱히 잘 하는 건 없어도 눈썰미 하나는 타고나 대충 흉내는 내는 편이라 속전속결로 해내는 것들이 많습니다.
18홀 골프 라운딩을 하고 돌아와 늦은 점심을 끝내고 의견충돌로 넘편은 삐뚤어져 잠을 자는데 할 일이 태산이라 눕고 싶은데 키친으로 내달립니다. '생일은 무슨~' 하는 짝꿍말을 귓전으로 날리며 펴지지도 않는 허리로 밑거림도 없는 생일상을 준비합니다.
검정콩이라고 해서 열었더니 팥색콩이 나와 콩밥 대신 팥밥이라 생각하며 먹으라는 말에 짝꿍은 '괜찮아~' 한 입 먹고 '맛있다!' 두 숫가락째 떠넣고 '맛있다?' 괜히 미안하게 만듭니다. 워낙에 잡곡밥을 싫어하다 보니 어느 새 제 입맛대로 찹쌀섞은 흰밥만 먹게 된지도 오래라.. 삶은 콩, 고구마, 버섯, 대추, 보리쌀, 찹쌀, 맵쌀을 넣고 오랫만에 잡곡밥을 했습니다. 콩고구마대추버섯 잡곡밥이 됐습니다. 단호박도 있는데 쿠쿠밥솥이 다 소화를 못 시킬 것 같아 참습니다.
한.유 합작 미역 홍합국
미역 한팩을 다 물에 담궜더니 너무 많아서 반만 합니다. 미역은 가위로 먹기좋게 잘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동네 유럽마켓에서 거의 쿡이 된 홍합을 팔기에 몇 팩 사다둔 걸로 삶아 알맹이만 미역국에 넣습니다. 지난번 그냥 데워 먹었더니 껍질이 깨진 게 있어 큰일날 뻔 했거든요. 미역국이 몇 시간 끓였더니 뿌옇게 부드럽고 맛이 좋았는데 완성된 걸 찍는 건 잊어버렸네요. 짝꿍이 '사진 찍어서?' 알려주는데 자느라고 못 알려줘서 사진이 실종됐습니다. 미역 홍합국이 한국과 유럽 합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무우채 오이 소배기
부추도 없이 오이 소배기가 만들어졌는데 상큼, 사각한 게 먹을만 합니다. 골프 다녀와 잠깐쉬고 서너 시간만에 만들어내느라 이도 저도 아닌 게 많지만 정성만은 누구 못지않고 처음 시집와 일 배우는 새댁처럼 열심입니다. 바쁜 마음으로 몇 시간 쪼그리고 앉아할 때는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빠진 것도 많고 아쉽기도 합니다.
짝꿍의 채칼은 너무 길고 두껍게만 썰어져 무채나물도 무김치도 저는 별로라는데 저렇게 큰 양동이에 몇 년째 채를 썰어줍니다. 작은 채칼로 하면 좀더 부드러운 게 좋은데~ 그래도 뭐든 돕겠다고 할 때는 군말않고 그냥 '맘대로 하셔요' 하면서 맡깁니다. 예전에는 밥상을 차려내 놔으면 같이 먹자는 말도 없이 혼자 먼저 수저들던 사람이 장족의 발전입니다. 아침에 라운딩 가기전에 무우채 양념해둔 걸 소금에 절여 한 입 크기로 네 등분한 오이속에 넣습니다. 빼 먹은 게 많지만 맛나게 먹어주니 '맛 있거니' 합니다.
늦은 점심 이후 저녁도 굶고 자는 짝꿍을 깨워 '밥 먹을래요?' 했더니 먹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 12시에 홍합 미역국에 콩고구마대추버섯 잡곡밥을 먹었습니다. 둘다 출퇴근도 없는 노년의 삶 그 여정길에서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자고 노는 일에도 웬 만큼 익숙된 건지 자다 깨어먹고 또 자도 건강전선 '이상무' 라 감사한 일입니다. '비말이복에 난리' 그러면서도 맛나게 먹어주는 짝꿍이 고마와 '미리 생일 축하해요!' 했더니 '축하는 무슨' 하길래 '그럼 왜 태어났니?' 그렇게 말해야 하남.. 하면서 둘이 웃고 맙니다.
젊을 때는 24시간을 엊갈리며 같이 앉아 편안하게 밥상 한번 제대로 받을 수도 없이 힘들게 살았는데.. 미역국을 보더니 도미어묵도 하나 넣어 달라고 주문해 도미어묵 꼬치 2개를 넣고 다시 끓입니다. 밥 한 숫갈을 떠 입에 넣다가 '사진 찍어서?' 묻습니다. '아, 안 찍었네!' 먹는 밥그릇을 뺏아다 사진을 찍어 올립니다. 잡채도 하고 수육도 해서 장금이 뺨치게 아이디어 내가며 종종 걸음친 몇 시간이 힘은 들었지만 소소한 노년의 삶이 삐뚤어졌다~ 바로 됐다~ 매분매초 투닥이며 사그라져도 건강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임금님의 수라상은 아니었고 짝꿍의 생일상이었습니다.
비말 飛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