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시니어 재봉반
오래 전에 칼리지에서 재봉을 배운다는 친구전화에 동네를 검색했더니 멀지않은 곳에 있어 재봉반 등록을 하고 갔더니 55 세 이상이면 무료인 교실에는 70 에서 80 넘으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까지 계셨습니다.
꽤 오랜 동안 미싱으로 뭔가를 만들어대긴 하는데 제대로 배웠다는 게 여학교 때 조각 이불과 짧은 치마 하나 만들어 본게 고작이었던지라 엉성 그 자체인데 동양인같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옆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계속 쏟아냅니다. 헝겊, 색실, 가위, 자, 공책.. 별로 넓지도 않은 보드위에 다 펼쳐놓고는 그제서야 제게 말을 겁니다.
‘아유 코리안?’ 허걱 어찌 알았지? 나를 첨보는 이들은 ‘일본인’ 이냐 묻는데. 반가움에 ‘예쓰, 아엠’ 교실이 다 울립니다. 필리핀에서 이곳에 온지 35 년이 됐고 나이는 57 살, 아이들은.. ‘쉬이이’ 아까 주차장에서 오래된 렉세스 자동차 차문을 활짝 열어놓고 십분을 넘게 그 좋은 풍채로 가로 막고 서 있으시던 (덕분에 차안에 갇혀 꼼짝을 못했던) 그 백인할머니가 살짝 눈가에 짜증을 올리면서 주위를 줍니다. 내 차가 너무 새 거였나? ‘애들아, 선생님 오셨다’
‘아, 담번엔 다른 곳에 앉아야지’ 이 여자의 수다 정도면 바느질하다가 누군가의 입도 꿰메 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체격좋고 활달해 보이는 미싱샘을 올려다 보면서 여중 1 때 가정샘을 기억해 냅니다. 잘 배워 자기같은 엄마는 되지 말라시던 체육샘보다 체격 좋으셨던 샘. 시집가셔서 첫 애기 갓난쟁이한테 크고 예쁜 뒷단추를 달은 원피스를 만들어 입혔는데 애기등에 단추구멍들이 뻘겋게 파여 시어머니께 ‘너가 무슨 가정 선생이냐’ 고 호되게 야단 맞으셨다던~
앞치마도 만들고 조각 이불도 만들고 냄비 받침대도 접시 받침대도 만들고.. 헌데 은근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게 울집에 세일할 때 싸게 사둔 비단 공단 비싼 천들도 많은데 이상한 싸구려 허벌렁거리는 천조각들을 재봉샘 당신이 아는 옷감가게에 가서 사와서 만들라니 여엉~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이 미국샘은 나보다 두 살이나 아랜데 덩치로 깔아 뭉개면서 사이즈를 잴 땐 저를 모델로 세워놓고 없는 가슴 (?) 을 더 쿡쿡 눌리기도 하고 거칠게 마구 돌려 세우기도 하면서 '아, 승질 같아서는..' 그래도 얌전하고 이뿌고 우아하게 하라는 대로 팔을 올렸다 내렸다 궁둥이를 돌렸다 허리를 꾸부리고~ '아, 나 아직 보기보단 많이 아픈데!' 혼자만 힘듭니다. '에잉~ 젊고 날씬한 것도 죄다!'
12 월이 새 달력으로 넘어가고도 오래라 익숙한 느낌일 텐데 비말네 뜨락 아이들은 정신줄을 놔아 버렸나 봅니다. 그 앉은 자리가 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아버지가 한국전에서 싸우셨다면서 아주 친절하고 기분좋게 다가왔는데 어째 점점 하는 투가 '기분이 나쁘다?' 6.25 전쟁 당시를 들은 건지 ‘그 때는 헐벗었다는데 지금은 다들 먹고 살만한 가보다?’ 혹은 자기가 알던 한국 여자는 매달 ‘헝겊으로 달거리를 해결했다’ 는 둥.. 도저히 그냥 참기가 힘들었는데 그게 다 일요일 자기가 쉬는 날 한국인들 몇 분도 섞여있다는 곳에서 통역해 달라는 것을 거절한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그 거절도 엄청 어렵게 한 거였는데..
나이의 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살아낸다는 것은 우리에게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끝내면 가뿐하고 기분좋고 않하고 그냥 두면 찝질한 숙제.. 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몸이 내 생각처럼 따라 주지도 않는데 맘은 자꾸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리려 합니다. 몸이 아프시고 맘이 아프셔도 숨 쉬듯이 숙제 하나씩 해 치우시면서 선물같은 오늘, 그 현재를 박음질 해 가시자고요.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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