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속에서 아직도 엄마냄새가 난다
붉은 색을 시러라 하다보니 어쩌다 생겨진 분홍색 빨강색 종류의 옷들은 한 두번 입고는 옷장이나 가방속에서 꾸겨진 체 몇 십년을 잊혀지고 다른 이들에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스물 한살 음력 생일날 입었던 하양색과 주황색에 자수 놓인 공단 치마저고리가 나이 들어서 입어도 괜찮을 것 같다시던 엄마의 말씀처럼 45년이 지난 지금도 색이 참으로 곱습니다.
세탁소에서 찾아온 채로 옷장에 걸려있는 다른 한복들과는 달리 주단집 백에 구겨진 체 담겨있는데 엄마가 가르쳐 주신 동전다는 것도 옷고름도 어찌 제대로 매지를 못 하는지~ 어쩌다가 미국사람이 다 됐습니다. 간혹 무슨 행사때나 한번씩 입었는데 이젠 그 조차도 끊었으니.
연분홍색 꼬장중우와 매끄러운 하얀 명주 속치마도 있고 공주옷 같은 페치코트와 여러벌의 한복들이 있는데 무지개색 하이힐 가죽 꽃신이 좀 이상타 했더니 역시 제 짝은 아니었네요.
제 생일을 두 주일 쯤 지나고 나면 엄마 기일인데 올해는 아직도 엄마 냄새가 배여있을 것 같은 저 옷들 차려입고 금줄 쳐진 크리스탈잔에 석류주 가득 담아놓고 눈가가 빠알게 지도록 한잔 쯤 원샷?
예닐곱살 때는 언니, 엄마가 입으셨던 한복치마를 잘라 제 옷을 만들어 주셨는데 무명으로 덧댄 치마말을 제 몸에 맞게 하시고 길이는 무릎밑에 까지 그러고는 양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 속에 딱지랑 구슬을 넣었던 기억도 납니다.
저고리에는 잊지 않으시고 이쁜 단추를 달아 주셨는데 아버지의 마고자 누런 호박을 탐내는 제 눈빛에 사고낼까 (?)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간혹 이쁜 단추달린 저고리를 더 어린동네 아이한테 줄 때 ‘단추를 떼고 주면 안되느냐’ 고 했다가 야단을 맞았던 기억도요.
‘삶은 채워가는 책꽂이’ 라고 말했던 어느 시인의 글에서 처럼 남이 이미 채워둔 것들로 내 것에 덧입히려 말고 지난 세월 내 걸어온 그 시간들 속에서 흔들리고 찢기고 다시 뭉쳐져 하나된 내 것, 그것들로 색칠도 모양도 남은 생을 곱고 이쁘게 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에는 유행처럼 얼굴에 모자이크하고들 내놓던 블방 사진들~ 앨범 찾아 다시 올리면서 모자이크 벗겨내야 겠습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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