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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여행

모텔 캘리포니아와 목화밭 농장주

by 비말 2023.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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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캘리포니아와 목화밭 농장주


에덴의 동쪽처럼 그런 꿈 하나 싣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달리고 달려서 간 곳, 캘리포니아의 끝자락에서 만난 그 곳에는 푸근한 이부자리 해덮던 목화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Cotton fields, 노래로도 영화로도 몇 십년 동안 듣고 부르고 보았던 목화밭에는 흑과 백의 애환과 질긴 아픔들이 서려있던 미국 영화속에 늘 단골로 등장하던 곳입니다.

Cotton fields. 아차 (?) 했으면 비말이도 목화밭 농장주가 될 뻔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셔도 대충은 오다가다 만나셨을 비말이네 20년 살던 집이 하룻만에 팔렸다던 사실과 준비없이 갑자기 팔린 집 때문에 오갈 곳 없이 집없는 천사들이 되어 몇 달을 딸넴네와 호텔, 모텔을 전진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어쩌다보니 이젠 말로도 글로도 기억조차 희미해 진 2020년 9월중순 그 이후가 사진으로 만나도 무덤덤하고 그런 일들 '있었지' 싶기는 합니다만 아찔했던 순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캘리포니아 끝자락에서 만난 목화밭


온 앞뒷뜰 뜨락을 가득 채운 풀꽃나무들과 화분들을 나눔하기도 녹록치않을 만큼 정신없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코로나 19와 펜데믹 그리고 갑자기 상승하는 집세에 신문 방송 TV에서 밤낮으로 쉬지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 전쟁들 보다 더 많다는 뉴스들엔 정신이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집이 팔렸다는 얘기에 '그런가?' 하던 딸넴과 사위가 달려오고 일단 가까운 짐보관소에 큰 짐들을 넣기로 하고 웬만한 건 다 도네이션 하기로 하면서 (이사 생각 1도 없을 때부터 정리 정돈은 해 뒀지만)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딸넴은 자기네 집으로 일단 가서 지들 가까운 곳에서 부터 집을 알아보자는데.. 비싼 동네에 살 만큼의 돈도 않됐지만 '집만 사 놓고 손가락 빨고 있을 거냐?' 는 지아버지 말에 딸넴이 '그럼 자기네가 마당이 넓은 집을 사서 거기서 함께 살자' 고 하니 두 늙은이 머리속에 계산기가 돌아갑니다.

할베는 정원사에 애들 보기로 등.하교길 운전기사에 할매는 무수리로 부엌에서 음식해 대느라 밤낮으로 불과 싸우고 시간 틈틈히 정원 가꾸며 (물론 3/2 이상이 우리집에서 가져간 나무들 이겠지만) 아픈 허리 맘껏 꾸부리기도 냄새나는 파스를 24시간 붙이고 있기도 눈치 보일 것이고.. '우린 그럴 마음없다!' 생각지도 않게 엄청 빠른 짝꿍의 대처에 도리어 눈치보는 마눌이었습니다.

목화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다 떠나고


한 2 주일을 함께 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아이들만 신나고.. 한국의 추석날 아침 드디어 결정을 내렸습니다. 말리던 사위는 바쁘다고 빠지고 붙잡던 딸넴은 삐쳐서 보지도 않고 아이들은 금방 돌아올 줄 알고 얼굴에 프라스틱 마스크까지 쓴 체 웃으면서 '바이' 를 합니다. 일단은 호텔을 정하고 바둑이까지 데리고 나와 생활하는 동안 잠시 딸네서 숨도 못쉬고 살았다는 해방감에 신이나서 그 동안 못 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다 하면서 외식과 외박으로 매일이 노는 날입니다.

그러다가 통행 금지가 생기고 묵던 호텔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 폐쇄를 한다고.. 다른 호텔들에서는 강아지는 출입금지라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하나?'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한다더니 딱 그 말처럼 자동차로만 다니면서 동쪽에서 먹고 서족에서 잠자는 생활이 시작되기도 했는데 그것도 잠시 한국 음식점들도 문을 닫고 간혹 밖에서 텐트친 속에서 먹으라는데 가격은 비싼데 음식은 제 값을 못하고.. 드뎌 정신들이 듭니다. '우리 어쩌면 밖에서 죽을 지도 모르겠다, 객사!' 생각만 해도 후덜덜한데 바둑이도 지난 여름 라스베가스, 아리조나까지 집보러 다니느라 지쳐서 100도가 넘는 기온에 몇 번을 기절하더니 이빨들이 죄다 빠지고 시름시름 앓습니다. 호텔 사람들 눈치가 보여 운동도 못 시키고 갑자기 재발한 사고 휴유증에 허리를 구부러기도 힘든 마눌도 엉거주춤~ 아직은 돌쇠처럼 든든한 짝꿍만이 안으로 밖으로 움직이면서 음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사다 나릅니다.

아름다운 목화꽃 솜은 슬픈사연들을 숨기고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같아 전화로 인터넷으로 검색해 인도인이 하는 모텔에 연락이 닿아 찾아갔더니 '강쥐도 오케이' 자기네 모텔에서 젤로 깨끗한 방이라며 내준 방은 이층의 층계앞 밤낮으로 사람들이 들고나는.. (나중엔 모텔 주인들 방 옆을 내줬지만), 아무튼 둥 그렇게 시작된 모텔 생활에 조금은 정을 붙일만한 찰라 어디선지 많은 사람들이 매시간 꾸역꾸역 밀려듭니다. 자동차에 이불 한 짐을 싣고 온 가족이 방안으로 못 들어가니 누구는 파킹장에 차를 세우고 거기서 잠을 자고 눈뜨면 방으로 올라가 목욕을 하고.. 음식을 사다 나르고~ 마스크들도 않하고 있으니 곁에 스치기도 무섭습니다.

평상시에는 돌아볼 것 같지도 않던 작고 보잘 것 없고 별로 깨끗하지도 않은 모텔에 밤낮으로 들이치는 손님들~ 주인들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 겠던지 일주일만 계약하고 하루는 방을 비우고 다시 돌아와 재계약을 해야 한답니다. 더는 개인수표도 않받고 크레딧카드로만 방값을 받겠답니다. 그러했음에도 우리 세식구들한테는 늘 친절했고 객실 담당자들한테도 일러 깨끗한 수건과 청소를 당부하기도 하면서 변함없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우리 방은 그냥 그대로 두고 하루만 나갔다 오면 된다고 해서 그 때부터 다시 우리 세 식구의 계획없는 여행은 시작되고 자동차에 몸을 싣고 동가식서가숙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꿔봤을 목화밭


어딘가로 정처없이 떠돌이 별이 되어 어느 날은 라스베가스 쪽으로 또 다른 날들은 텍사스 근처까지 혹은 아리조나 경계에 까지 반 기절 상태로 다니면서 '이게 집 팔고 나면 여행도 다니자' 했던 그거 였으면 '좋겠다' 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밝게 웃으며 다녔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혹시 이런 거 글로 쓰는 날이 오면 그 때에 가서 써먹을 거라 찍어뒀던 사진들은 어느 짐속에 묻혀있는지 찾을 길 없고 느슨해진 뇌가 골을 때리지만 살아있음에 후한 점수를 주며 '더 열심히 살자!' 선한 마음도 돼 봅니다.

어느 날 전화받고 나간 캘리포니아 끝자락에서 만난 목화밭, Cotton Fields 사진을 보면서 '그런 날들도 있었는데' 하면서 '이것봐, 기억나?' 사진을 보여주는 마눌도 곁눈으로 보는 넘편도 안도의 숨을 쉬면서 '우리 진짜 죽을뻔 했다, 그 때!' 그러면서 눈을 마주칩니다. 그러니 너무 작은 일들에 아둥바둥하지 말고 타협하면서 살자는 무언의 약속을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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