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캘리포니아와 목화밭 농장주
에덴의 동쪽처럼 그런 꿈 하나 싣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달리고 달려서 간 곳, 캘리포니아의 끝자락에서 만난 그 곳에는 푸근한 이부자리 해덮던 목화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Cotton fields, 노래로도 영화로도 몇 십년 동안 듣고 부르고 보았던 목화밭에는 흑과 백의 애환과 질긴 아픔들이 서려있던 미국 영화속에 늘 단골로 등장하던 곳입니다.
Cotton fields. 아차 (?) 했으면 비말이도 목화밭 농장주가 될 뻔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셔도 대충은 오다가다 만나셨을 비말이네 20년 살던 집이 하룻만에 팔렸다던 사실과 준비없이 갑자기 팔린 집 때문에 오갈 곳 없이 집없는 천사들이 되어 몇 달을 딸넴네와 호텔, 모텔을 전진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어쩌다보니 이젠 말로도 글로도 기억조차 희미해 진 2020년 9월중순 그 이후가 사진으로 만나도 무덤덤하고 그런 일들 '있었지' 싶기는 합니다만 아찔했던 순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온 앞뒷뜰 뜨락을 가득 채운 풀꽃나무들과 화분들을 나눔하기도 녹록치않을 만큼 정신없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코로나 19와 펜데믹 그리고 갑자기 상승하는 집세에 신문 방송 TV에서 밤낮으로 쉬지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 전쟁들 보다 더 많다는 뉴스들엔 정신이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집이 팔렸다는 얘기에 '그런가?' 하던 딸넴과 사위가 달려오고 일단 가까운 짐보관소에 큰 짐들을 넣기로 하고 웬만한 건 다 도네이션 하기로 하면서 (이사 생각 1도 없을 때부터 정리 정돈은 해 뒀지만)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딸넴은 자기네 집으로 일단 가서 지들 가까운 곳에서 부터 집을 알아보자는데.. 비싼 동네에 살 만큼의 돈도 않됐지만 '집만 사 놓고 손가락 빨고 있을 거냐?' 는 지아버지 말에 딸넴이 '그럼 자기네가 마당이 넓은 집을 사서 거기서 함께 살자' 고 하니 두 늙은이 머리속에 계산기가 돌아갑니다.
할베는 정원사에 애들 보기로 등.하교길 운전기사에 할매는 무수리로 부엌에서 음식해 대느라 밤낮으로 불과 싸우고 시간 틈틈히 정원 가꾸며 (물론 3/2 이상이 우리집에서 가져간 나무들 이겠지만) 아픈 허리 맘껏 꾸부리기도 냄새나는 파스를 24시간 붙이고 있기도 눈치 보일 것이고.. '우린 그럴 마음없다!' 생각지도 않게 엄청 빠른 짝꿍의 대처에 도리어 눈치보는 마눌이었습니다.
한 2 주일을 함께 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아이들만 신나고.. 한국의 추석날 아침 드디어 결정을 내렸습니다. 말리던 사위는 바쁘다고 빠지고 붙잡던 딸넴은 삐쳐서 보지도 않고 아이들은 금방 돌아올 줄 알고 얼굴에 프라스틱 마스크까지 쓴 체 웃으면서 '바이' 를 합니다. 일단은 호텔을 정하고 바둑이까지 데리고 나와 생활하는 동안 잠시 딸네서 숨도 못쉬고 살았다는 해방감에 신이나서 그 동안 못 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다 하면서 외식과 외박으로 매일이 노는 날입니다.
그러다가 통행 금지가 생기고 묵던 호텔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 폐쇄를 한다고.. 다른 호텔들에서는 강아지는 출입금지라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하나?'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한다더니 딱 그 말처럼 자동차로만 다니면서 동쪽에서 먹고 서족에서 잠자는 생활이 시작되기도 했는데 그것도 잠시 한국 음식점들도 문을 닫고 간혹 밖에서 텐트친 속에서 먹으라는데 가격은 비싼데 음식은 제 값을 못하고.. 드뎌 정신들이 듭니다. '우리 어쩌면 밖에서 죽을 지도 모르겠다, 객사!' 생각만 해도 후덜덜한데 바둑이도 지난 여름 라스베가스, 아리조나까지 집보러 다니느라 지쳐서 100도가 넘는 기온에 몇 번을 기절하더니 이빨들이 죄다 빠지고 시름시름 앓습니다. 호텔 사람들 눈치가 보여 운동도 못 시키고 갑자기 재발한 사고 휴유증에 허리를 구부러기도 힘든 마눌도 엉거주춤~ 아직은 돌쇠처럼 든든한 짝꿍만이 안으로 밖으로 움직이면서 음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사다 나릅니다.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같아 전화로 인터넷으로 검색해 인도인이 하는 모텔에 연락이 닿아 찾아갔더니 '강쥐도 오케이' 자기네 모텔에서 젤로 깨끗한 방이라며 내준 방은 이층의 층계앞 밤낮으로 사람들이 들고나는.. (나중엔 모텔 주인들 방 옆을 내줬지만), 아무튼 둥 그렇게 시작된 모텔 생활에 조금은 정을 붙일만한 찰라 어디선지 많은 사람들이 매시간 꾸역꾸역 밀려듭니다. 자동차에 이불 한 짐을 싣고 온 가족이 방안으로 못 들어가니 누구는 파킹장에 차를 세우고 거기서 잠을 자고 눈뜨면 방으로 올라가 목욕을 하고.. 음식을 사다 나르고~ 마스크들도 않하고 있으니 곁에 스치기도 무섭습니다.
평상시에는 돌아볼 것 같지도 않던 작고 보잘 것 없고 별로 깨끗하지도 않은 모텔에 밤낮으로 들이치는 손님들~ 주인들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 겠던지 일주일만 계약하고 하루는 방을 비우고 다시 돌아와 재계약을 해야 한답니다. 더는 개인수표도 않받고 크레딧카드로만 방값을 받겠답니다. 그러했음에도 우리 세식구들한테는 늘 친절했고 객실 담당자들한테도 일러 깨끗한 수건과 청소를 당부하기도 하면서 변함없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우리 방은 그냥 그대로 두고 하루만 나갔다 오면 된다고 해서 그 때부터 다시 우리 세 식구의 계획없는 여행은 시작되고 자동차에 몸을 싣고 동가식서가숙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어딘가로 정처없이 떠돌이 별이 되어 어느 날은 라스베가스 쪽으로 또 다른 날들은 텍사스 근처까지 혹은 아리조나 경계에 까지 반 기절 상태로 다니면서 '이게 집 팔고 나면 여행도 다니자' 했던 그거 였으면 '좋겠다' 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밝게 웃으며 다녔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혹시 이런 거 글로 쓰는 날이 오면 그 때에 가서 써먹을 거라 찍어뒀던 사진들은 어느 짐속에 묻혀있는지 찾을 길 없고 느슨해진 뇌가 골을 때리지만 살아있음에 후한 점수를 주며 '더 열심히 살자!' 선한 마음도 돼 봅니다.
어느 날 전화받고 나간 캘리포니아 끝자락에서 만난 목화밭, Cotton Fields 사진을 보면서 '그런 날들도 있었는데' 하면서 '이것봐, 기억나?' 사진을 보여주는 마눌도 곁눈으로 보는 넘편도 안도의 숨을 쉬면서 '우리 진짜 죽을뻔 했다, 그 때!' 그러면서 눈을 마주칩니다. 그러니 너무 작은 일들에 아둥바둥하지 말고 타협하면서 살자는 무언의 약속을 합니다.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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